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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기획특집 [주보성인] 빈첸시오 드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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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04회 작성일 19-09-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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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당 주보성인] 빈첸시오 드 폴

가난한 이들 위해 생을 바쳐 투신

조직적으로 빈자들 돕기 위해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설립
제1대리구 일월본당 주보

발행일2019-09-01 [제3160호, 4면]

빈첸시오 드 폴.
가난한 이를 위한 활동은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본당에서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매진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쉽게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의 이름을 딴 단체다.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인은 제1대리구 일월본당의 주보성인이다.

성인이 태어나던 16세기 말의 프랑스는 8차례의 종교 전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귀족들은 막대한 세금을 걷어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교회는 부유한 사람들의 편에 서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신뢰하지 못했다. 이런 경향에 반발해 더욱 하느님께 충실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는데, 오히려 화려한 성당이 많이 지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 혼란한 사회 속에서 성인은 한 농부의 6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의 가정 역시 빈곤과 가난에 시달렸고, 교육적으로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갔다.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목동 일을 하던 성인이었지만, 성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성인의 아버지는 성인을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맡겨 교육을 받게 했다. 이후 성인은 닥스 대학교와 툴루즈 대학교에 진학해 공부한 뒤 1600년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성인은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도망쳐 나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프랑스 해군 함대 총사령관인 공디 가문의 가정교사와 영적 지도신부로 활동하게 됐다. 성인은 공디 부인의 부탁으로 영지 내 폴빌의 가난한 노인을 위해 병자성사를 집전하게 됐다. 성인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는 그 노인을 통해 영적 빈곤에 놓인 가난한 이들을 돌봐야한다는 사명을 깨닫게 된다. 이에 성인은 1617년 1월 군중설교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했다. 1617년에는 프랑스의 가난한 마을 샤티옹의 주임신부로 사목하기 시작했다.

성인은 가난한 이를 돕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본당에 자선동지회를 설립해 자선과 봉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또 성인은 1625년 교구 사제들을 모아 ‘선교회’를 설립하고, 1633년에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를 설립해 복음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성인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은 날로 늘어났는데 성인이 살아있을 당시에 이미 프랑스를 넘어, 폴란드,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북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에 선교회가 퍼져나갔다.

성인은 진정한 신앙은 복음생활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사람안에서,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임을 끊임없이 가르쳤다. 성인은 특히 활동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도록 강조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실 때, 결국 그들을 사랑해 주는 이들도 사랑해 주십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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