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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1239호 : (암사동빈첸시오회)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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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테레사 댓글 0건 조회 1,206회 작성일 13-11-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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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인숙(왼쪽) 회장이 4일 본당 빈첸시오회 주최 '이웃돕기 김장나눔'에서 김치를 담그다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이힘 기자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19] 가슴 가득한 주님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신나는 발걸음

5.사랑으로 열매맺는 신앙 (2)사랑 실천


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 빈첸시오회 오인숙(마리안나) 회장


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주임 김중광 신부) 오인숙(마리안나, 55) 빈첸시오회장은 성당에서 '천사'로 통한다. 밤이나 낮이나 지역 사회 어려운 이들을 챙기는 덕분이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 평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사가 끝나면 으레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 25년을 암사동에서 살았기에 동네를 돌면 많은 이웃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디에 사는 누가 어렵다더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빈첸시오 회원들과 함께 찾아가 돕는다.

 오 회장은 본당에서 매주 주일미사 뒤 성금 모금 캠페인 '100원의 기적'을 펼친다.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보탬이 돼주려는 것이다. 김장철이면 신자들과 함께 김장하고 쌀도 나눈다. 쌀과 김치를 가득 실은 그의 자전거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본지 사랑 나눔 캠페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에 외롭게 투병생활 하던 홀몸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자주 소개해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주특기다. 그래선지 본당에서 빈첸시오회장을 맡은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기라도 한 듯, 얼마 전부터는 암사1동 주민센터 '동(洞) 복지 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서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 발굴과 도움을 주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사랑 실천을 하는 데 남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저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곤 했는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며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내세웠다.

 \"주님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갑작스레 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만날 때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야 할 때는 (이거 못하면) '내가 망신 당하나? 하느님이 망신 당하시지' 하고 화살기도를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체면을 구기는 일은 만들지 않으시죠.(웃음) 사랑 실천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덕분이에요.\"

 품속에 부적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무속인 말만 듣고 살았던 그가 하느님 자녀로 거듭난 것도 모자라, 열정적으로 이웃 사랑에 나서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 회장은 \"굶어본 사람만이 배고픈 사람 심정을 안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알 수 없는 이끌림에 하느님을 찾았다. 1978년 장녀가 태어났지만 27일 만에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곧 둘째를 가졌지만, 병원에서 유산할 확률이 80%라는 진단을 받았다. 계속된 남편의 사업실패로 임신부가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주위에서 \"이혼하라\"며 종용하기도 했다. 오 회장은 \"그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다 눈보라가 쏟아지던 날 임신한 몸으로 무작정 물어 찾아간 곳이 서울 대방동성당이다. 난생처음 성당에 들어서자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이리 오너라'하는 것 같았다. 성당에 도착하자 신기하게 눈보라가 멈췄다. 성모상 앞에 선 그는 '남편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뿌리 깊은 신앙인이 되게 해 주시고, 아버지를 증거하는 딸이 되게 해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1981년 세례를 받은 그는 주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새 삶을 시작했다.

 세례 후 암사동으로 이사 온 오 회장은 본당에서 반장직을 맡으면서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돕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아버지와 살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가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진 여학생을 1년 8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오 회장의 선행을 적극 지지해온 남편과 두 아들은 잃었던 딸, 누나가 다시 살아온 것처럼 몹시 기뻐했다.

 한 신자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자비로 떡을 지어 신자 가정을 돌며 일주일간 모금한 덕분에 무사히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준 적도 있다. 큰아들이 초등학생 때는 점심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들 친구를 위해 남몰래 수년간 도시락을 싸줬다. 홀로 사는 할머니 목욕을 시켜주면서 몇 달 동안 움직일 수 없었을 정도로 아팠던 팔이 저절로 낫는 '작은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주님 뜻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면서 더욱 굳센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20년 이상 이어온 그의 선행은 수백 명이 세례를 받는 결실로 나타났다. 2000년에 이미 선교왕에 뽑힌 적이 있는 그의 일화는 2001년 서울대교구 2000년대 복음화사무국이 발행한 「선교의 기쁨」 책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눈이 어두워서 몇 년 동안 집 안 청소를 하지 못한 할머니 집을 말끔히 청소해드렸을 때 할머니가 '나 시집가도 되겠어'하며 기뻐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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