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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1251호 : [나의 묵주이야기] 71. \"다시는 잃지 않으마, 사랑하는 묵주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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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테레사 댓글 0건 조회 1,381회 작성일 14-02-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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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묵주이야기] 71. \"다시는 잃지 않으마, 사랑하는 묵주반지\"

임만택 제노 (서울대교구 삼성동본당 빈첸시오회 회원)
 


 
내일은 비닐하우스촌에 연탄 배달하는 날. 일기예보는 올겨울 들어 가장 춥고 눈이 오는 날이라 한다. 큰일이다. 5700장이 넘는 연탄을 나눠줘야 한다.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며 손가락에 낀 묵주반지를 잡고 기도한다.

 \"주님 내일 제발 눈 좀 그치게 해주시고, 추운 겨울을 지내는 어려운 분들에게 연탄과 쌀, 라면을 무사히 전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당일 새벽 5시. 밖을 보니 흰눈이 쌓여 있었다. 어떻게 준비했는데 날씨가 이러나, 그동안 진땀을 빼가며 각 성당에 부탁해 봉사자 수십 명을 모집해 놓고 지원 물품도 어렵사리 마련했는데 참 난감했다. 조금 있으니 임원들도 못 나오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쏟아진다.

 하지만 어쩌랴. 묵주기도를 바치며 작업 도구를 챙겨 들고 현장에 나갔다. 마침 몇 명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오늘 날씨가 춥고 빙판길이어서 봉사자들도 아무도 안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아니요, 오늘 꼭 해야만 해요.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손가락에 낀 묵주를 돌리며 \"제발 예정대로 진행하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대책을 논의하는데, 멀리서 하나 둘 봉사자들이 나타났다. 곧 눈이 그치고 바람이 멎으면서 무려 80여 명이 모였다. \"와우! 주님, 땡큐\" 하며 연탄과 라면박스를 들고, 눈 덮인 비탈길 골목을 누비며 홀몸노인과 장애인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할머니 집에 \"연탄 왔어요\" 하니, 그 할머니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연탄이 두 장밖에 없었는데…\"라고 하셨다. \"할머니 자식 없어요?\" 하고 물으니, \"있는데 아들 딸이 아예 안 와\"라고 하신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이 집에 연탄 60장 더요!\"

 그동안 빈첸시오회 활동 25년. 내 묵주반지도 20년이 넘었다. 반지와 헤어질 위기가 두 번 있었지만 다행히 되찾았다. 한 번은 지인이 자기에게 반지를 주면 세례를 받겠다기에 다짐을 받고 빼줬다. 그날 아내에게서 \"요즘 금 한 돈이 얼만데 그걸 줬느냐\"고 핀잔을 받았다. 그런데 역시나 반지를 가져간 그가 영 성당에 다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가서 되찾아왔다.

 또 한 번은 빼놓은 반지가 없어져 온 식구가 집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못 찾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회장님 반지 같다\"며 건네주는 게 아닌가. 아마 내가 전날 화분갈이를 하면서 수돗가에 빼놓았던 모양이다.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반지에 입을 맞추고 성호경을 올렸다. 다시는 잃지 않으마, 사랑하는 묵주반지!

 사실 우리 집안은 불교 집안이었다. 어머님은 아침마다 108배를 하셨고, 아버님은 사찰을 지어 기증할 정도였다. 결혼 후에도 절에 다니며 초파일에 등도 켜고, 스님께 수시로 인생상담도 받았다. 그리고는 몇 년 후 거래하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내 모든 재산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때, 부처님 가호를 받으려 방생을 하고 부적을 쓰고, 무당까지 찾아다녔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 후유증은 참으로 길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내가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기독교 환자'가 될까봐 말렸지만 결국 아내는 세례를 받았고, 이듬해에는 아이들까지 영세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내가 영세하게 됐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영세 뒤로는 막강한(?) 대부님의 권유로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해 처음 묵주기도를 했다. 단장과 서기로도 봉사했다. 빈첸시오회 활동도 시작해 둘 다 활동하다가 이제는 빈첸시오회 활동만 전념하고 있다.

 요즘 새벽이면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묵주기도하는 아내의 뒷모습에서 신비스런 영감을 받으며, 내 약지에 낀 묵주반지를 정성껏 돌린다. 묵주는 신앙의 무기가 돼 나를 지켜주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게 힘을 준다. 내가 만났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고, 더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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