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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1251호 : (대림동빈첸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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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테레사 댓글 0건 조회 926회 작성일 14-02-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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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산나씨가 지적장애 3급인 오빠의 식사를 돕고 있다. 백영민 기자

지적장애 아들ㆍ오빠 돌보며 생활고까지

20년 이어진 남편의 가정 폭력으로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이 수산나씨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지만, 제가 없으면 누가 아들과 오빠를 돌봐주겠어요.\"
 
 서울 영등포구 한 옥탑방. 이 수산나(46)씨가 오빠 이진욱(가명, 55)씨에게 늦은 점심을 차려준다. 방 한쪽에는 이씨의 아들(20)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웅얼거린다. 이씨는 \"아들과 오빠 모두 지적장애인\"이라며 \"얼마 전 돌아가신 친정 엄마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고 했다.
 
 시련은 결혼과 함께 시작됐다. 남편은 \"여자는 결혼 초반에 잡아야 한다\"며 하루가 멀다 폭력을 행사했다. \"너만 아니면 모든 게 잘 풀렸을 것\"이라는 폭언도 뒤따랐다. 시어머니는 \"여자가 참아야 한다\"며 아들을 두둔했다. 출산 후에도 폭력은 끊이지 않았고,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더 잦아졌다.
 
 \"그분(남편)께서 아이마저 때릴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친정 오빠들이 무서웠는데, 오빠들이 없었으면 아마 남편에게 맞아 죽었을 거예요.\"
 
 이씨는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남편을 꼭 '그분'이라고 불렀다. 남편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20년간 이어온 폭력에 정상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의 버팀목이었던 친정 엄마마저 \"장애인 오빠를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형제들 역시 형편이 어려워 장애인 오빠는 이씨가 돌봐야 했다. 다행이라면, 남편이 집을 나가 연락이 끊어져 더 이상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지만, 평생 세상과 고립된 삶을 이어온 그에게 가장의 역할은 무리였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생활비가 없어 고민하던 중 사채 관계자 전화를 받고 \"돈을 꿔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돈을 빌렸다.
 
 그렇게 빌려 쓴 원금과 이자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돌봄이 필요한 아들과 오빠 곁을 떠날 수도 없다. 시간을 쪼개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다 보니 일용직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오빠가 받는 장애인 수급비와 소속 본당인 대림동본당의 도움으로 가족은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고 있다.
 
 희망이 없는 상황이지만, 이씨는 아픔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서고 싶다고 했다. 첫걸음으로 신앙이 깊었던 친정 엄마의 뜻을 따라 레지오 마리애와 본당 성가대 활동도 시작하고 수녀를 만나 심리치료도 받았다.
 
 \"저 같은 여성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직업도 구하고, 종일 집에만 있는 아들도 복지관에 보내야죠.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속내를 털어놓던 이씨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후견인 : 박찬득 (라이문도, 서울 대림동본당 빈첸시오회) 회장

이 수산나씨는 남편에게 학대받으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습니다. 불어난 빚으로 생계마저 어렵습니다. 이씨가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후원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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