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선을 향하는(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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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51회 작성일 24-09-06 12:07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선함을 살아가고 있음이 용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가 착함을 선택하고 참됨을 선택할 때 이미 그는 용서하고 있으며, 용서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선한 이가 화해하지 않은 이가 없으며, 착한 이가 이가 이미 화해를 계획합니다. 참된 이는 용서를 결정합니다. ] 그렇게 하여 선함은 용서를 이끌고 용서를 완성합니다.
선하다면 나는 이미 미움 등으로 묶인 것을 풀고 있습니다. 내가 착함은 미움과 시기와 화와 분노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내가 참됨은 이미 용서를 이루었습니다.
묶인 실타래를 풀어갈 때, 그 푼 만큼 그 실을 사용하고, 그 묶인 실타래. 전부를 풀 때, 그 실 전부를 사용할 수 ] 있습니다. 실을 풀 때 일부만 풀어 쓰는 일은 없습니다. 그 품은 모두를 푼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화해하기가 어렵다면 선을 행합니다. 내가 아직 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자비를 실천합니다. 용서하기가 어렵다면 참된 것을 기꺼이 선택합니다. 선과 참됨의 끝은 용서이고, 그 용서는 크고 놀랍습니다.
여러분, 아직은 화해 때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도 스스로 허락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기 시작하기 바랍니다. 자비와 사랑을 통해서 나눔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용서 때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심갖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그때 참된 생각과 마음과 행위로서 나아가기 바랍니다. 이미 용서가 내 앞에 와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평상시 풀어감과 화해를 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와의 화해 조차, 용서 조차 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내가 그와 화해를 하지 않거나,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돼지가 진주를 짓밟듯 밟을 위협과 위기를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만남과 대면에서 선과 진리 그리고 정의와 공정이 발견되지 않고 그것을 마구 뒤흔들고 짓밟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를 만날 때, 기도와 함께 그에게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기도가 또한 용서의 시작입니다. 그것으로 그도 끝내 복을 받는 사람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선하고 참된 길을 오늘도 걸어갑니다. 용서의 시작이고 또 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께 용서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선과 참으로서 용서를 사는 날. 그 날이 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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