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첸시오 바로가기

게시판

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길, 생명, 주는 것(2018.08.3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18-08-31 10:20

본문

금요일은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사람은 누구나 생의 가치를 찾습니다. 그 가치를 따라 살면서 의미를 추구합니다.

이렇게 질문합니다.

나의 생명은 무엇에 있는가?

나의 선은 무엇에 있는가?

나의 길은 무엇에 있는가?


생의 목적. 곧 삶의 목적을 한걸음 더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삶의 가치를 성찰해야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어느 아파트에서 주차 문제로 심한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파트 주민이었지만, 거주 표시를 않했거나, 못했던 차 주인에게 경비원은 여러 장의 경고장을 붙였고, 차주는 항의를 하고, 주차장 입구에 차를 막아 주차시키고, 주민들은 여러가지 조롱하는 말로, 조각말을 써 붙이고, 차주인은 화가 나서 차를 중고 시장에 넘기고, 주민들은 차를 옮기지 못하도록 묶어 채워 놓았다고 합니다.


쉽게 풀어갈 수 있고, 조그맣게 해결할 수 있고, 부드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이토록 어렵게 수 많은 실타래가 꼬이고 또 꼬이는 길로 들어서는 것. 그 이유가 어디있는지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이 가정, 직장, 학교, 사회, 각 공동체에 있고, 그런 갈등의 요소들이 수두룩합니다. 세상살이. 세상살이 자체가 갈등과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고 갈등을 계속 유발하는 것보다는 쉽게, 간단히, 부드럽게 풀어가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불편함을 먼저 풀어야 합니다. 자기의 좌불안석을 풀어야 합니다. 참지 못하는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화를 풀고, 미움과 증오감을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풀 수 있는 내적 조절, 내적 조정 능력이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아파트의 갈등에 적어도 여기에 연류된 차 주인과 주민들, 경비원까지 포함하여 그런 자정, 조절, 조정 능력의 상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 특히 신앙인들은 이런 자정, 조절, 조정 능력의 상실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의 길, 진리, 생명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의 세속적 가치의 자기들의 삶의 가치. 규정, 홀로. 곧 자기 자신의 극단적 이기주의 곧 자기의 우상의 가치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가치와 입장을 바라보고, 용인하고 인정할 줄 아는 유여가 필요합니다. 자기 집착 주장도 필요하지만, 상대의 주장과 입장도 들을 수 있는 조정, 조절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치고 인도하고, 특히 부모는 공동체의 선과 사랑의 가치를 균형있게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나 교회,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바른 인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길, 진리,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길. 선함, 삶이란 것은 그것은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과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십자가가 하느님의 힘이며 지혜라고 하였습니다(1코린 1,24). 십자가의 가치가 곧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다.고 하였습니다(1코린 1,25).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빵을 먹고 마셔라.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하였습니다(요한 6, 54).


생명은 주는 데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는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자기를 죽이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자기 살과 피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이 먹히우고 마시게 하였습니다. 자기 생명을 양식으로 내어주었습니다.

생명은 주는 데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내어 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는 자기 생명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 생명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잃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일은 하는 사람은 우둔하며 참으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루카 9,24


주님의 생명, 길,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칠 줄 아는 사람은 매사에 일어나고 전진하고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다(루카 9,23).

예수님의 생명 길 진리를 따르는 인 자기를 버릴 줄도 알고 십자가를 질 줄도 압니다. 그것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요일은 생명의 날입니다. 생명의 주인 주님을 따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바리고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