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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하느님 나라, 정의와 공정의 길(201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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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00회 작성일 18-08-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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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의 날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 33


먼저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을 찾으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느님 나라의 것과 그 의를 먼저 찾습니다. 나의 행복의 원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산의 도토리나무 열매가 제법 알이 굵어졌습니다. 그런데 도토리 알 가지가 익지도 않았는데 많이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도토리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 데 미리 가지째 떨어집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폭염에 나무와 잎이 너무 뜨거워 제대로 수분과 양분 공급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뜨거움으로 수분을 많이 날려 보내고, 뜨거움을 방지하기 위해서 소진했습니다. 자라고 튼튼하게 하는 데 충분히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나무가 결실을 보아야 하지만, 가지의 영양 상태와 견고함을 유지하지 못하여 알과 가지가 함께 떨어지고 있습니다. 폭염이 미치는 자연에 대한 악영향을 보고 있습니다.


씨가 떨어져 잎, 가지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봄부터 늦가을까지 적절한 빛살과 수분과 양분과 함께 자라야 합니다. 그 기간에 빛과 수분과  공기와 바람이 적절하게 오고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장에 불균형이 생기고 성장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 자녀나 공동체원의 성장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적절한 햇빛과 양분과 공기와 수분, 바람을 통해서 줄곧 성장의 기간동안 이런 것들이 제대로 제공이 되는 지 생각합니다. 교육에서 많은 가족들이 심고 나서 결실만을 보려는 것 같습니다. 결과만 보려합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점수나 성적이나 가족들이 생각하는 목표와 학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남의 어느 학교에서 학교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1,2등을 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직 수사의 결과는 나지 않았지만, 올바름을 규명해야 하지만, 지금 부모들. 그들의 관심과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식들의 성적과 점수, 그들이 경쟁하고자 하는 것에만, 그 가치에만 매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상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점수와 성적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성입니다. 바르고 참되며, 성실하고 의로움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참되고 정직하며 정의와 공정에 따라, 자신은 물론 세상 공동체에 연대하고 협력하는 품성과 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양육되어야 합니다. 점수와 성적 때문에 돈과 자본으로 교육의 진보 척도를 가지고, 상호 모두와 경쟁하며, 자본의 우위에서 점수와 성적을 점령하는 이런 교육구조에 몰입하는 이런 가족들이 있다면 그것을 정의롭다거나 공정하다거나, 사랑과 자비를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종교인이고, 그리스도 신자라 하여도, 스스로는 사랑을, 자비를, 정의를, 선을, 공정을 외치면서도 실상 생활은 비 종교인이나 비 그리스도인과 다름이 없거나, 더 못한다면 참된 주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이처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는 사랑과 자비, 선과 진리, 공정과 정의를 삶의 척도로 삼고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의 나라입니다. 종교인이나 그리스도 인이지만, 이 하느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살지 않고, 그 일을 행함이 없이 살아간다면 하느님 나라라는 말을 입에서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를 바란다면 자비와 사랑, 선과 진리, 공정과 정의를 알고 곧 실천해야 합니다.


부자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라하신 예수님 말씀에서 그는 종교생활과 사회 규범과 윤리는 따랐을 지 몰라도, 정작 자기 부와 향유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친 직간접의 부끄러움과 잘못을 바꾸는 데까지 사고되지 못했습니다. 향유하는 자기것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마음과 여유가 없는 부자청년,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로움을 구하는 것은 사랑과 자비,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을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게 하느님 나라의 이 가치가 부족하거나 없다면, 진정한 회개 되돌아섬이 필요하고, 다시금 하느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정과 정의를 외쳤습니다. 그 공정과 정의의 길을 따라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 외에 우상을 섬기지 말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말며,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빚 담보를 돌려주며, 강도 짓을 하지 말고, 꿂주린 이에게 빵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옷주고, 변리를 받으려고 돈 주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고 불의에서 손을 떼며, 사람들 사이에 진실한 판결을 하며, 하느님의 규정을 따르고 법규를 준수하고 진실하게 지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고 반드시 산다고 하였습니다(에제 18, 5-9).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고 하였습니다.


토요일은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입니다. 공정과 정의를 지켜나가고, 도덕과 윤리를 지켜나가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때에 그 의로움 속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곁들여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 33


하느님 나라와 의로움의 길은 공정과 정의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멀리하고 선과 진리를 택합니다. 실천하는 가운데 의로운 사람이 되어,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축복해 주시고 풍성하게 열매맺게 하십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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