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1310호 해방촌협의회 “도시락에 하느님 사랑 담아 ‘희망의 싹’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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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테레사 댓글 0건 조회 1,040회 작성일 15-04-23 11:58본문
[오늘을 사는 사람들] 16년째 나눔 활동 펼치는 선덕님 유스티나씨
“어르신 새 도시락 왔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늘 신경 써주는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못 했네.”
큼직한 도시락통을 양손에 든 선덕님(유스티나, 62, 서울 해방촌본당 빈첸시오회 회장)씨는 남산 자락 아래 서울 용산 2가동 해방촌 골목을 거침없이 다니며 가정마다 도시락을 나눠줬다. 모든 대상자 가정 위치를 머릿속에 꿰고 있는 그는 “형님”, “어르신” 하며 문을 두드린다. 컴컴한 단칸방에 홀로 있던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씨를 반기고 문앞까지 배웅한다.
선씨의 빈민 가정 도시락 배달 봉사는 벌써 6년째다. “모든 밑반찬도 이전에 본당 지원을 받으며 어렵게 지내던 어르신들이 성당에 모여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도록 그녀가 이끈 것이다.
그는 “도시락통이 새로 교체될 때마다 크기가 자꾸만 커지고 있다”며 “이동할 때 좀 무거워도 그만큼 그분들이 더 행복해하지 않겠느냐”고 웃음 지었다.
“‘나눔’은 결코 혼자 해선 안 되더라고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공동체 모두가 함께 신경 쓰고 노력해 연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거기에 성경 말씀은 나눔의 지침이 돼줍니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나눔론’은 16년째 쉬지 않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다. 이쯤 되면 ‘나눔의 달인’으로 칭해도 좋지 않을까.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네요. 봉사하기 이전 약국을 17년 정도 운영했는데, 그 세월만큼 봉사했네요. 그런데 돈 많이 벌던 전보다 이렇게 나누며 지내온 삶이 더 행복합니다.”
약사였던 선씨는 1998년 세례를 받은 뒤 생업이던 약국을 접고 이웃을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단골손님이 건넨 신앙 서적에 적힌 ‘어려운 이웃을 그냥 버려둘 것인가’란 대목이 삶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선씨는 이후 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해 홀몸 어르신, 환자 가정, 한부모, 조손 가정까지 어려운 집을 모두 다녔다. 초창기 5년간 공부방 교사로도 활동했는데, 선씨에게 배운 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며 대부분 잘 됐다. 그들 중 몇몇은 고마운 마음을 매달 후원금으로 전하고 있다.
“처음 곳곳을 다녀보니 이웃들 삶이 너무 열악한 거예요. 마음 아프고 안타까워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 마음을 모아 하루하루 나누다 보니 오늘에 이르게 됐네요.”
선씨는 빈첸시오회에서만 줄곧 활동해오면서 본당 사회사목분과장, 지구 사회사목회장 등을 오랫동안 겸했다. 초창기 본당 재정 구조를 잘 모르던 때, 당연히 나오는 줄 알았던 본당 사회사목 활동 지원비가 끊기자 사제관을 찾아가 무작정 “신부님, 손가락 빨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은 어떡하느냐”며 매달린 적도 있었다.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본당 장터’는 선씨의 ‘영업력’ 덕분에 지역 자영업자들도 늘 참여하는 나눔의 장이 됐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이곳 빈첸시오회 명예회원은 200여 명에 이른다. 발로 뛰어 지금까지 60여 가정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등록해주는 등 그의 나눔 영역은 다 헤아리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공동체 모두 함께 나누니까 이만큼 지역민과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나누면 주님께선 늘 은총과 도움을 주셨어요. 제 걸음에 함께하시는 주님과 함께 계속 어려운 분들 ‘희망의 싹’ 심어주러 다닐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어르신 새 도시락 왔습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늘 신경 써주는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못 했네.”
큼직한 도시락통을 양손에 든 선덕님(유스티나, 62, 서울 해방촌본당 빈첸시오회 회장)씨는 남산 자락 아래 서울 용산 2가동 해방촌 골목을 거침없이 다니며 가정마다 도시락을 나눠줬다. 모든 대상자 가정 위치를 머릿속에 꿰고 있는 그는 “형님”, “어르신” 하며 문을 두드린다. 컴컴한 단칸방에 홀로 있던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씨를 반기고 문앞까지 배웅한다.
선씨의 빈민 가정 도시락 배달 봉사는 벌써 6년째다. “모든 밑반찬도 이전에 본당 지원을 받으며 어렵게 지내던 어르신들이 성당에 모여 직접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도록 그녀가 이끈 것이다.
그는 “도시락통이 새로 교체될 때마다 크기가 자꾸만 커지고 있다”며 “이동할 때 좀 무거워도 그만큼 그분들이 더 행복해하지 않겠느냐”고 웃음 지었다.
“‘나눔’은 결코 혼자 해선 안 되더라고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공동체 모두가 함께 신경 쓰고 노력해 연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거기에 성경 말씀은 나눔의 지침이 돼줍니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나눔론’은 16년째 쉬지 않고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다. 이쯤 되면 ‘나눔의 달인’으로 칭해도 좋지 않을까.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네요. 봉사하기 이전 약국을 17년 정도 운영했는데, 그 세월만큼 봉사했네요. 그런데 돈 많이 벌던 전보다 이렇게 나누며 지내온 삶이 더 행복합니다.”
약사였던 선씨는 1998년 세례를 받은 뒤 생업이던 약국을 접고 이웃을 위한 활동에 돌입했다. 단골손님이 건넨 신앙 서적에 적힌 ‘어려운 이웃을 그냥 버려둘 것인가’란 대목이 삶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선씨는 이후 본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가입해 홀몸 어르신, 환자 가정, 한부모, 조손 가정까지 어려운 집을 모두 다녔다. 초창기 5년간 공부방 교사로도 활동했는데, 선씨에게 배운 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며 대부분 잘 됐다. 그들 중 몇몇은 고마운 마음을 매달 후원금으로 전하고 있다.
“처음 곳곳을 다녀보니 이웃들 삶이 너무 열악한 거예요. 마음 아프고 안타까워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 마음을 모아 하루하루 나누다 보니 오늘에 이르게 됐네요.”
선씨는 빈첸시오회에서만 줄곧 활동해오면서 본당 사회사목분과장, 지구 사회사목회장 등을 오랫동안 겸했다. 초창기 본당 재정 구조를 잘 모르던 때, 당연히 나오는 줄 알았던 본당 사회사목 활동 지원비가 끊기자 사제관을 찾아가 무작정 “신부님, 손가락 빨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은 어떡하느냐”며 매달린 적도 있었다.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본당 장터’는 선씨의 ‘영업력’ 덕분에 지역 자영업자들도 늘 참여하는 나눔의 장이 됐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이곳 빈첸시오회 명예회원은 200여 명에 이른다. 발로 뛰어 지금까지 60여 가정을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등록해주는 등 그의 나눔 영역은 다 헤아리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공동체 모두 함께 나누니까 이만큼 지역민과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나누면 주님께선 늘 은총과 도움을 주셨어요. 제 걸음에 함께하시는 주님과 함께 계속 어려운 분들 ‘희망의 싹’ 심어주러 다닐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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