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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치오회

회소개

1833년 5월 프레드릭 오자남과 동료들에 의하여 설립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 처음에는'자선 협의회'였으나, 1835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정신을 이어받아 고통 받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애덕을 실천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창설과 발전

1833년 당시 파리 소르본대학교의 법과대학생이었던 오자남은 토론 모임인'역사 협의회'의 활동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동료들과 함께 '자선 협의회'를 설립하여 자선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몇 개의 '협의회'를 새로 만드는 가운데 그들은 1834년 2월에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를 수호 성인으로 정하고, 1835년에는 회의 명칭을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로 바꾸었다. 아울러 같은 해 12월 8일에는 성인의 저서에 기초하여 회칙을 제정하였고, 1845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공적인 평신도 단체로 승인을 받았다. 그 후 1850년까지 급속도로 성장한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널리 확산되어 유럽 . 아프리카 . 소아시아 . 북아메리카에까지 진출하였다. 이와 함께 1856년 1월에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여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창설되어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는데, 이 여성 단체는 비록 남성 빈첸시오회와 같은 규칙과 정신으로 활동하지만, 그들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조직과 규모면에서 성장을 거듭한 빈첸시오회는 설립 100주년이 되던 1933년 전 세계적으로 13,000개의 '협의회'와 20만명이상의 회원이 활동하는 단체로 성장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침체되기도 하였지만, 종전 후 다시 활기를 띠면서 1950년에는 17,000개 협의회에 회원이 30만명에 이르게 되었다.한편 1963년부터 논의된 남성 단체와 여성 단체의 통합은 1967년에 와서야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두 단체의 통합은 이후 그들의 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하여 2007년 현재 144개국에 960,0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명예 회원들이 물질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조직은 본당 안에 구성된 '협의회'를 기본 조직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남성 . 여성 . 혼성 . 청소년협의회가 있다. 그리고 지구단위의 지구 이사회를 비롯하여 교구 이사회, 전국 이사회가 있으며, 이들은 파리에 있는 '총이사회'를 정점으로 통일성을 이룬다. 새로운 협의회와 이사회의 설립은 총이사회의 인준을 받아야 하며, 매주 1회 회합을 갖는 '협의회'에서는 기도와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협의를 한다. 회원은 매주 회합에 참석하여 직접적인 만남으로 애덕을 실천하는 활동회원과 직접적인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매월 일정한 회비를 납부하는 명예 회원으로 나뉜다. 회의 원칙을 따른다면 미신자라도 가입 할 수 있다. 빈첸시오회의 활동은 각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활동이다

한국진출

빈첸시오회는 1930년대에 <가톨릭 청년>과 <가톨릭 조선> 에 창립자 오자남과 함께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단체 설립을 전제로 소개된 것은 1955년부터였다. 당시 충주 교현동 본당 주임 보어 신부는 1955년 5월 파리 총이사회와 서신 연락을 통해 본당 내에 빈첸시오회의 '지원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1960년 3월에 개최된 파리 총이사회에서 뉴질랜드 빈첸시오회가 한국 빈첸시오회를 돕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 빈첸시오회의 정식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 되었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 5일 청주교구장 파디 주교의 주선과 뉴질랜드 빈첸시오회의 대표 게이노에 의해빈첸시오회가 정식으로 한국에 도입되었고, 1961년 1월 6일에 회칙이 번역되면서 1월 29일 교현동 본당에 최초로 '성 요셉 협의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같은 해 1월 31일에는 춘천교구의 '운교동협의회'가, 2월 8일에는 서울대교구의 '명동 협의회'가 설립되었고, 1963년 4월에는 청주지구가 한국에서 최초로 교구이사회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한 빈첸시오회는 청주에 이어 서울(1967.7), 마산(1971.12)등이 교구이사회로 승격되면서 이를 총괄할 수 있는 전국 이사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973년 8월 7일 그 설립을 위한 창립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9월 17일에는 파리 총이사회로부터 전국 이사회의 설립을 승인받아 1년 반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75년 2월 21일 전국 이사회가 창립되었다. 이때 호세 산도발 신부가 초대 지도 신부로, 한병은(안드레아)이 초대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조직 면에서의 성장과 함께 한국 빈첸시오회는 설립 목적에 맞는 애덕 활동도 꾸준히 전개하였다. 회원들은 각 본당별 . 지구별 . 교구별로 환자 방문과 입원 주선, 극빈자 가정방문과 물적 지원, 교도소 재소자 및 사회 복지 시설 방문, 가출 청소년 지도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고, 1989년부터는 간병인회를 만들어 간병인들을 성모 병원 등지에 파견하였다. 또 전국 이사회에서는 1990년 9월부터 음성 꽃동네에 '천사의 집' 건립 기금을 지원하였고, 1993년에는 제2 천사의 집 건립 기금을 광주대교구 이사회에 전달하였으며, 1996년 10월 28일에는 서울에 행려자를 위한 무료 급식소 '성 빈첸시오 사랑의 집'을 개설한 데 이어 1997년부터는 대전에 건립 예정인 정신 지체아 조기 교육 시설에도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