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첸시오 바로가기

자료실

영상자료실

교육영상자료<제4부 빈첸시안의 사명-제4과: 가정, 공동체 및 권리> (영상은 링크 참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8회 작성일 18-08-28 16:53

본문

[제4부 빈첸시안의 사명] 제4과: 가정, 공동체 및 권리


본문


 
제4부 제4과: 가정, 공동체 및 권리

 

학습목표:

이 과목을 마치고 나면 회원들은

‘가정, 공동체 및 참여의 소명’에 대한 사회정의 교육을 이해한다.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회정의 교육을 식별한다.
‘가정, 공동체 및 권리’을 위한 사도적 묵상의 사용을 통찰한다.
 

시작기도: 다같이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6-8)

 

소개

각 단원을 돌아가면서 천천히 묵상하듯이 소리 내어 읽습니다.

 

가정, 공동체 및 참여에의 소명

 

인간은 신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존엄성과 권리를 인지하게 됩니다.  가정은 사회정의의 문제를 알리는데 중요한 공헌을 합니다.  가정에서 우리의 가치를 배우고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가정은 보호되고 강화되어야 할 사회조직이며 훼손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사회에 참여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고 모든 이들을 위한 공동선을 추구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정치적, 법률적, 경제적 기관의 중요한 시험은 그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하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그 기관에 참여하는지가 됩니다.(미국주교단, 자선의 모든것, 1999)

예언자처럼, 프레드릭 오자남은 1836년 11월 15일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제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 때문이라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과 너무 많이 가진 자들 사이의 투쟁, 세상을 흔드는 풍요와 빈곤의 난폭한 쇼크라면,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이 회복할 수 없는 두 적들 사이에 우리를 내던져서 다른 이들이 혜택을 보도록 하고, 그들도 자신들의 가진 것을 벗을 수 있도록 하고, 사람들 사이에 가능한 한 평등이 이루어지고 정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자선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재자로서 활동하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의 섭리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은 처음에 스스로 명백한 진리를 기반으로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미국은 역사적 경험을 치른 도덕적 진리가 지켜지는 한, 세상을 향한 자유의 등대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평화를 원하면, 정의를 위해 일하십시오.  정의를 원하면, 생명을 수호하십시오.  생명을 원하면, 하느님이 보여주시는 바로 그 진리를 포용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9년 1월)

 

권리와 의무

가톨릭 전통은 인간의 권리가 보호되고 의무가 행해져야 인간의 존엄성은 보호되고 건강한 공동체가 성립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생명과 인간품위에 필요한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기본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권리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서로 서로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더 큰 사회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권리’를 어떤 이들은 ‘책임’을 주로 말하는 세상속에서, 가톨릭 전통은 인간의 권리가 보호되고, 책임을 다 할 때만이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고 건강한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미국주교단, 자선의 모든것, 1999)

모든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는 자연법에서 파괴할 수 없는 도덕적 힘을 가져오며,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래서 권리를 주장하고 그들 각자의 의무를 잊거나 태만히 하는 사람은 한 손으로는 세우고, 한 손으로는 파괴하는 자들입니다.(Pacem in Terris, 교황 요한 XXIII, 1963)

사람들은 생명과 음식, 옷, 주택, 건강, 교육, 안전, 사회서비스 및 고용 등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기본 권리가 있습니다.(미국 가톨릭 주교단, 1990)

잠시 침묵 안에서 묵상을 하고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에 밑줄을 치거나 줄 사이에 필기를 한다.

 

나눔:

빈첸시안의 경험상, 왜 인간은 배고픔을 겪고, 집이 없으며, 교육을 못 받고, 힘든 고용상태이거나 혹은 실업자가 될까요?

 

마침기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가진 것과 능력을 기부하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식탁의 자리를 찾도록 필요한 태도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아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0)

 

사도적 묵상 절차

다음 협의회 모임에서 통합되어야 함:

 

‘가족, 공동체 및 참여에의 소명’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사회에 시작된 분열이 깊어지는 것을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부자들의 집단이 생기고, 저 곳에는 가난한 이들의 집단이 생겨납니다.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두 집단 사이에 자신들을 내세워서 선한 일을 하면서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서로를 형제 자매처럼 여기도록 하고, 사랑의 마음을 넣어서 이 사랑이 양쪽의 이기심을 없애고 매일 매일 불목을 줄여야 합니다. 두 집단이 일어나서 편견의 벽을 허물고, 성난 무기를 버리고서, 한 목자 밑에 있는 같은 양떼가 되는 것입니다.(‘한 우리 안의 양떼, 같은 목자’) (프레드릭 오자남, 1837)

모든 이들을 위한 미국 주교단의 경제적 정의에서: 1997년 가톨릭 사회교리 및 미국경제에 대한 사목교서에서, 주교들은  물질자원의 부족보다 더 많은 빈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빈곤은 공동체 생활에서 완전한 참여를 부정하고 개인의 삶에 강한 충격을 주는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합니다.  참여의 원칙을 수용하면서, 미국 주교단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가장 적절하고 기본적인 빈곤 해결책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봉사활동 중에 직면하는 상황에 대해서 나누십시오, 특히 가정방문 중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시오.
누군가를 참여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내리는데 참여한 적이 있습니까?  그러한 경험을 나누어 보십시오.

 

눈, 귀, 가슴, 마음, 감정을 열고 봉사와 나눔을 할 때 내적으로 무엇이 일어나는지 서로 이야기 하십시오.
인생을 되돌아보고 당신의 가족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가치를 심어 주어서 당신이 사회적 정의 문제를 제기하도록 도움을 주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의 삶 안에서의 느낌에 대해 묵상하기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참여를 신장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4부 4과의 내용에 대한 기도와 묵상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지?  어디에서 빈첸시안으로서 감동을 받았습니까?

 

새로 알게 된 사실과 도전해야 한다고 느끼는 새로운 활동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당신의 사도직 활동에서 완전한 참여의 장애를 없애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야기 해 봅시다.)

 

사도적 묵상 절차

(다음 협의회 모임에서 통합되어야 함)

 

‘권리와 책임’
인간의 권리에 대해 토론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생명, 신체 통합권, 삶의 적절한 발전을 위한 수단들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이런 수단들이란 주로 음식, 의복, 주거, 휴식, 건강관리와 마지막으로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또한 병들거나, 일할 수 없거나, 배우자를 사별하거나, 늙거나,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나, 혹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생계가 박탈당할 경우에 안전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교황 요한 XXIII, #11-1963)

“저는 요청하건대… 우리가 너무 가난하고 충분한 권리조차 없으며, 사회문제에서 충분한 할당을 받아야 하며, 직업의 안정성, 가난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 안에서 상류사회가 잃어버린 충분한 신앙심과 도덕심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프레드릭 오자남, 1842년 2월 22일)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채 두지 않으며, 그러한 부담으로 인해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의와 진리의 엄밀한 의무입니다.  이러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문기술을 습득하고, 나눔의 중심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최고로 이용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새로운 사태 100주년(On the Hundredth Anniversary of Rerum Novarum) -1991, #34)

“가장 큰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가난’입니다.  배고픈 얼굴을 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를 우리 앞에 세워 놓으면 우리는 도와주려고 뛰어듭니다.  어린이들은 아시다시피 자신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잘못된 상태로 자신들을 내던진 어떤 나쁜 선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한 어떤 일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가난해도 정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어린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운이 나쁜 가난한 어른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어렵게 만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이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쁜 선택을 하였거나, 전혀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전에 도움을 받았으나 –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자신들을 구해내 주길 바라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시스템이나,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그들을 도우십시오.  만약 당신이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도움 받을 자격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별하기 시작하면, 복음의 측면에서 보면 당신은 끝장이 난 것입니다.  누가 그들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까?  저는 우리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조심스럽게 당신의 도움을 자로 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예수님은 자비를 주실 때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한 아낌없는 자비 때문에 비판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억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도움을 줍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무언가 더 깊은 빈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절망과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  우리는 그 깊은 내부의 무언가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을 도와 주십시오.  판단하거나 지나치게 조심하지 마십시오. 실수를 하게 된다면, 아낌없이 주는 실수를 하십시오.“(Kenneth E. Untener 주교)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직면하게 되는 상황, 특별히 가정방문 중에 생긴 일에 대하여 나누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묵상하십시오.
기본적인 인권의 결핍으로 가난하고 힘들게 살거나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아는 것에 대하여 나누십시오.

 

눈, 귀, 가슴, 마음, 감정을 열고 봉사와 나눔을 할 때 내적으로 무엇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나누십시오.
인간의 권리를 해치는 이야기에서 여러분들이 들은 인간적이고 시스템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섬기는 이들의 생활 안에서의 느낌에 대해 묵상하십시오.
이 이야기를 듣고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아래 질문들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듣고 묵상할 때 하느님이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 내 안에 어떤 움직임이 있었습니까?

. 내 안에서 생겨난 결심은 무엇입니까?

. 협의회 회합 때에 우리 안에서 이 나눔을 함으로써 무엇을 일깨워줍니까?

 

4부 4과(가정, 공동체, 인권)에 대하여 기도하고 묵상하십시오.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를 주었습니까? 빈첸시안으로서 당신에게 어느 부분이 가장 큰 감동을 주었습니까?
 

새롭게 알게 된 사실과 실천해야 한다고 느낀 새로운 활동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