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첸시오 바로가기

자료실

영상자료실

교육영상자료<제2부 빈첸시안의 영성- 제3과 행동중의 묵상> (영상은 링크 참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18-08-28 16:40

본문

[제2부 빈첸시안의 영성] 제3과 행동중의 묵상

학습목표:

이 과목을 마치고 나면 회원들은

‘행동중의 묵상’이라는 소명 이해
신비의 영성을 인식
봉사를 통한 빈첸시안의 영적 성장 이해


시작기도(다함께)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아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1-46)



소개:

(Go! On the Missionary Spirituality of St. Vincent de Paul, by Fr. Robert P. Maloney, CM, 176-177쪽)

각 단원을 돌아가면서 천천히 묵상하듯이 소리 내어 읽습니다.

수도자는 기도와 묵상 안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빈첸시안이 기도와 묵상을 하는 한 가지 이유는 활동과 인간 안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묵상하기 위함입니다. 빈첸시안들은 행동 중의 묵상과 기도하는 사도로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와 활동은 건전한 빈첸시안 영성 안에서 함께 손잡고 갈 수 있습니다. 활동 없이 기도만 하면 도피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는 천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도의 영성은 기도와 활동이 서로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루어질 때 최선의 상태가 됩니다. ‘이마에는 땀방울과 팔에는 힘을 주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추상적인 하느님에 대한 훌륭한 이론적 사고와 고통 받는 사람들 안에서 묵상하고 봉사하는 살아계시는 주님과의 실제 개인적인 접촉의 차이을 분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빈첸시안 영성은 빈첸시오 성인과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의 삶의 경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빈첸시안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찾아내기 위하여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통찰력, 재능을 가져온 성인과 성녀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만들어진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성인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셔서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들 안에서 하느님의 선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과 그의 동료들이 빈첸시오회를 처음 시작할 때 좋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스승이 바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사랑의 딸회의 로잘리 랑뒤 수녀님이었습니다. 로잘리 수녀님은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랑했던 수녀님이셨고, 수녀님도 그 가난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하셨고 그들도 수녀님을 알았습니다. 로잘리 수녀님은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과 그의 동료들에게 품위와 존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 활동시 고려해야 할 점 등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로잘리 수녀님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뵙도록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잠시 묵상 하시고 마음에 와 닿은 단어/문구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을 이용해서 필기하십시오.



독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미국이사회 활동지침서, 14, 22-23쪽)



각 단원을 돌아가면서 천천히 묵상하듯이 소리 내어 읽습니다.

빈첸시오 영성을 이해하는 데 중심이 되는 것은 육화의 신비입니다. 빈첸시오 성인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육화의 신비를 강조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화의 신비를 공경하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스스로 원하셨고… 가난한 사람들의 종이 되셔서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성인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거나 해치는 모든 행위를 자신에게 해당되는 일로 간주하셨습니다.

빈첸시안 영성은 수평적이고, 육화된 그리스도의 인성에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빈첸시오 성인은 성 마태오의 말씀 속의 이 가르침을 토대로 삼았습니다: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내 형제 자매들에게 너희들이 해 준 일은, 곧 너희들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빈첸시오 성인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섬길 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반영하셨습니다.

빈첸시오 성인, 루이제 성녀, 복자 프레드릭, 복자 로잘리가 매우 사랑하셨던 육화의 신비는 믿기만 하는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 영성적 자비의 활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형제 자매들과 교류하는 빈첸시안들은 그들 안에 계시는 인간 예수, 육화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과의 만남은 빈첸시오 회원들을 변화시킵니다.

빈첸시안들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 시간, 장소에서 하느님이 오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이 되는 것이 빈첸시안들과 또 빈첸시안들과 관계있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육화의 신비가 되는 것입니다.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가 그의 생명줄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근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기도는 그의 삶과 사도직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프레드릭은 빈첸시오 성인의 가르침을 믿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그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와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힘을 주시는 그 분 안에서 제가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묵상 하시고 마음에 와 닿은 단어/문구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을 이용해서 필기하십시오.



나눔:

우리 협의회 활동은 기도와 활동이 반영되고 있습니까?



마침기도: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말씀을 마침기도로 바칩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육체의 눈으로 봅니다. 그들이 거기에 있고 우리는 그들의 이마에 보이는 가시관의 상처를 손으로 만져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의심은 사라지고 우리는 그들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음과 같이 사도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Tu est Dominus et Deus Meus”(당신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프레드릭 오자남의 서신 137쪽)



심화독서:

다음 과로 넘어가기 전에 각자의 기도와 묵상을 합니다.



빈첸시안으로서의 활동과 묵상을 함께 하기 (GO! ON THE MISSIONARY SPIRITUALITY OF ST. VINCENT DE PAUL, BY FR. ROBERT P. MALONEY, CM, 171-184)

오늘 우리 모두는 기쁨으로 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립과 외로운 모습의 공동체를 위해, 자유로운 초월을 위해, 삶의 의미를 위해, 참아내야 할 가치를 위해 단편적인 것 안에서 완전함을 향한 배고프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갈망이 있습니다. 저는 활동과 묵상을 하나로 엮는 빈첸시안 사도직 영성을 위한 5개의 주춧돌을 놓아드리고자 합니다.



빈첸시안 영성은 심오한 육화의 신비입니다.
빈첸시안 영성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에게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빈첸시오 성인은 사제, 수녀, 수사, 평신도 형제 자매들을 예수를 따르는 선교사, 종, 가난한 이들의 복음전파자가 되도록 불러 모았습니다. 성인께서는 심오한 복음의 의미를 이해했으며, 확신을 가지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절대적 중심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아무도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다른 영성은 스승이신 예수, 설교자이신 예수, 치유자이신 예수 등 다양한 예수님의 인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 당신께서 육화되셔서 그 자체로서 항상 절대적인 중심이십니다. 빈첸시안 사도직 영성의 초점은 하느님과의 일치, 성실하심, 사명에 대한 열정, 가장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 다른 제자양성의 갈망, 진실에 대한 열정, 분노와 부드러움을 조화시키는 능력, 정의를 위한 허기와 갈증의 하느님이 보내신 가난한 이들의 복음 전파자로서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그 분께로 돌아가십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밤을 지새면서 묵상 속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취하신 인성의 형제 자매들에게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면서 일치를 이루십니다.



우리의 거룩함, 하느님께 사로 잡힘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사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주님을 찾는 것은 가장 버림 받은 사람들과의 접촉에 의한, 특별히 우리의 사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우리회의 영성의 기둥입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는 먹을 것을 주었다. 내가 목말랐을 때 너희는 마실 것을 주었다…” 빈첸시안들이 구하는 하느님과의 진실한 일치는 분명히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시대의 오늘날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재차 주창하므로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교회 사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우리 빈첸시안 영성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에 깊숙이 우리들을 참여하게 합니다.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점차 강조되는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욕망, 희망, 가치, 필요한 것에 대해 고려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적 영성적 향상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빈첸시안 영성은 우리가 말하기 보다는 더 그들의 말을 들어주도록 하고, 우리가 모든 일을 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에 의해 우리가 복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빈첸시안의 기도는 고유한 원동력을 가지며 활동에서 흘러나와 활동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활동과 기도를 함께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빈첸시오 성인, 루이즈 드 마리약 성녀는 매우 활동적이셨으나 기도를 열심히 한 분들이셨습니다. 기도와 활동이 건강한 빈첸시안 영성 속에서 함께 나아가게 합니다. 빈첸시오 성인께서는 음식이 우리 몸을 위한 것처럼 기도는 우리 영혼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힘든 하루를 마친 다음에 우리에게 재충전을 해 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 매우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빈첸시오 성인께서는 사명의 활력은 우리가 매일 기도에 충실한 지의 여부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우리 회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빈첸시오 성인께서는 사건과 사람들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성인의 변화는 기도 안에서 극적인 은총의 체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 파리 길거리에 버려진 아기들, 지방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약탈과 같은 비참한 인간의 상황을 통하여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신 하느님을 인식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삶 안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은 또한 친교 속에서 형성된 깊은 사랑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공동체 친교는 우리의 정체성의 주요 요소입니다. 우리 영성의 기본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은 같은 사명을 추구하기 위한 사람들끼리 믿음과 사랑의 친교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 기도, 성체성사, 식사, 휴식을 취하기 위한 정해진 시간이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하여 사랑의 깊은 결속이 형성됩니다.



소박한 삶과 겸손함
우리의 기도는 소박함, 겸손함과 초연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로 하는 기도보다 침묵의 기도 중에 마음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빈첸시안의 기도는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소박하게 말하면서 초연하게 주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들어주는 일은 빈첸시안 봉사의 중심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의 첫 번째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첫 걸음도 기도 중에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형제들을 사랑하는 첫 걸음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빈첸시안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을 참고 겸손하게 끝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하는 일보다 듣는 일이 훨씬 더 큰 봉사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능력이 아니라 힘을 얻고 스스로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존엄성에 대한 가장 큰 예우는 그들의 말을 들을 때 집중하는 것입니다. 들어주는 것은 진실, 지혜와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론

우리 빈첸시안들이 당면할 미래를 생각할 때, 활동과 묵상을 통합하는 심오한 영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심각한 유혹은 활동에 너무 치우쳐서, 꿈을 활성화하고 활동에 생명을 주는 원동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활동은 하느님의 영, 그분과의 체험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사람이 되신 그 분의 위대한 사랑, 심오한 영성이 우리 안에 뿌리 내리고 있어야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 안으로 주님이 오심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웃들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이 그들을 어루만지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사람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들임을 인식할까요?

우리 안에 영성이 온전히 살아있으면, 그 때가 바로 빈첸시안들이 하느님의 왕국이 이 땅에 실현되었음을 알리는 놀라운 징표가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