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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영상자료<제3부 빈첸시안의 유산-제4과 복자 로잘리 랑뒤 수녀님> (영상은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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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회 작성일 18-08-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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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빈첸시안의 유산] 제4과 복자 로잘리 랑뒤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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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목표

이 과를 학습한 후에는

로잘리 수녀의 삶 안에서 빈첸시안의 전통을 발견하고
로잘리 수녀가 어떻게 프레드릭 오자남과 빈첸시오회 창립 회원들을 지도하고  안내했는지를 알게 되며
사랑의 딸회 수녀인 복자 로잘리 랑뒤의 시복을 기념하게 됩니다.
 

시작 기도(다함께)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오복음서 11:28-30)

 

소개

(각 과는 다른 회원들이 천천히 묵상하면서 낭독한다.)

 

쟌느 마리 랑뒤는 1786년 9월 9일 프랑스 꽁포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4자매 중 맏이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소박하고 신앙심이 충만했으며 작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어느 정도 유복한 사람들로 그 지역에서 진정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발발 당시 쟌느 마리는 세 살이었습니다. 1790년 이래 성직자들이 정부를 지원하겠다는 시민 선서를 하는 것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제,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이 선서를 거부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사형을 당했고 다른 몇몇은 잡히지 않기 위해 숨어 지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과 신뢰로서 랑뒤 가족은 이러한 사제들을 집에 숨겨 주었으며 아네시의 주교도 이들 집에 은둔해 지냈습니다.

쟌느 마리가 교육을 받고 자란 환경은 바로 이러한 굳은 신앙심 가운데 있었으며 언제나 발각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밤 그녀의 집 지하실에서 촛불을 켜고 첫 영성체를 모셨습니다. 그녀 부모의 모범과 이러한 특수한 환경이 그녀의 성격을 형성했습니다.

쟌느 마리는 젝스에 있는 우술라회 수녀원 기숙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거기에서 사랑의 딸회 수녀들이 환자를 돌보는 병원을 발견했습니다. 곧이어 그녀는 몇 년간 그녀가 느껴오던 하느님의 부르심이 분명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딸회 회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쟌느 마리는 1802년 5월 25일, 16세의 나이로 파리의 사랑의 딸회 본원에 도착했습니다.

양성기간을 마친 후, 쟌느 마리는 로잘리 수녀라는 수도명을 받고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도록 모우따르 구역에 위치한 사랑의 딸회 요양소에 파견되었습니다. 이 구역은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영적 등 모든 형태의 빈곤으로 가득 찬, 파리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질병, 건강하지 못한 빈민가, 극빈이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일상적인 몫이었습니다. 로잘리 수녀는 거기에서 무려 54년을 지냈습니다!

 

독서 ????미국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매뉴얼 198-199쪽과 제임스 P. 데럼, 톱 햇의 사도 54-56쪽)

(각 과는 다른 회원들이 천천히 묵상하면서 읽는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회장 에마뉴엘 베일리는 로잘리 수녀에게 창립 회원들을 보내어 그들이 자선 활동을 시작함에 있어서 지도와 지침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모우따르 구역에 있는 그들이 방문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정의 목록을 주었고 존경과 동정을 갖고 가난한 이들을 도울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로잘리 수녀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그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이 소중한 휴일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대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이것을 항상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똑같이 겪어왔더라면, 즉 우리의 어린 시절이 항상 끊임없이 빈곤했더라면 어쩌면 우리도 이 거리에 있는 가난한 이들이 그러하듯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항상 친절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이야말로 여러분이 가난한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친절과 사랑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어느날 로잘리 수녀는 말했습니다. “지난 밤, 나는 하느님의 심판대에 올라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엄격하게 심판하셨고 막 나의 형벌을 선고 하시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때 나는 낡은 장화, 신발, 모자를 들고 온 사람들의 큰 무리에 둘러싸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들고 온 것들을 하느님께 보여드리고는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을 준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이름으로 이 낡은 옷가지들을 주었으니, 내가 너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겠다. 들어가라, 영원한 생명으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 로잘리 수녀가 영향을 끼친 미덕은 빈첸시오 회원들이 여성적·남성적 은총들을 통합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을 계속함에 따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목격 되어 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로잘리 수녀를 2003년 11월 9일에 ‘복자’로 선포함으로써 그녀의 미덕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잠시 묵상합시다.- 감동받은 단어나 구절에 밑줄을 그어봅시다.-옆 공란에 적어봅시다.

 

나눔 : 현대의 빈첸시안으로서, 로잘리 수녀의 말씀이 당신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마침기도 : (로잘리 수녀의 말씀을 함께 기도합시다.)

 

“가난한 이들을 잘 돕고 그들을 항상 친절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들을 모욕할 것입니다. 그들이 무례하면 무례할수록 여러분은 더 많은 존엄과 존중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그 누더기를 걸친 이들 뒤에 숨어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일에서 한 시간을 잃게 하는 것은 배고픈 가족에게 빵 한 덩어리가 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멘

 

심화독서 : 다음과로 넘어가기 전 묵상과 기도를 위해

 

복자 로잘리 랑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키에렌 니브스, 사랑의 딸회의 글

매일 눈이오나 비가오나, 로잘리 수녀는 한 손에 묵주를 쥐고 무거운 바구니를 든 채 하느님과 함께 모우따르 구역의 거리와 골목들을 분주히 오갔습니다. 그녀는 하느님께 그녀가 방문할 가정에 대해 아뢰고 그들이 겪는 시련과 근심, 염려 등을 덜어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길에서 가장 기도가 잘 되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샘처럼 맑은 그녀의 믿음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하루 하루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께서 초기 사랑의 딸회 회원들에게 하신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루에 열 번씩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십시오, 그러면 거기에서 하루에 열 번씩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로잘리 수녀는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섬기는 분은 바로 예수님 그분입니다. 그분의 고통 받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큰 존경과 헌신을 해야 하는지요! 늘 그렇듯이 선한 이든 악한 이든 간에 우리가 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큰 인내와 친절을 가져야 하는지요!”

로잘리 수녀의 동료 수녀가 증언한 바와 같이 그녀의 기도하는 생활은 매우 강렬했습니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살았습니다. 그녀가 완수하기 어려운 사명을 받은 경우 우리들은 늘 그녀가 경당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게 되거나 집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모우따르 구역은 파리에서 가장 가난한 구역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거리에 많은 걸인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업자였으며, 거주시설은 극빈하고 주민의 3분의 2가 겨울에 땔감이 부족했습니다. 로잘리 수녀는 지치지 않고 가난하고 소외된 그들을 돌보고, 먹이고 방문하고 위로하고 편안히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숨막히게 하고 식욕을 잃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상당히 많은 가족이 먹을 빵의 부족을 겪고 있다는 생각입니다.”…그녀의 여성스런 직관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즉시 찾아냈고 해결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지성과 용기를 동원하여 모든 걸 감수해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에 관해서 만큼은 아무것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로잘리 수녀에게 ‘인간성의 은총’이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과 친했고 그들을 이해했으며 온 마음과 믿음을 다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여기에 그녀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불의와 빈곤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그녀는 권력자와 가진 자들의 양심을 각성시켰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 모두의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자선을 베풀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돈을 주거나 무엇인가를 주는 방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보다 완전하고 지속 가능한 혜택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들의 능력과 교육 수준을 관찰하고 그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직업을 구해주려고 해야 합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모우따르 구역과 까르띠에 라탱은 그다지 멀지 않아서 그녀의 집무실에서는 법대생, 의대생, 교대생 및 공대생 등 모든 종류의 직업을 꿈꾸는,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친절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로잘리 수녀는 개인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신경을 쓰고 그들을 도우며 그들의 가족들과도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에게 그들이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요청하곤 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글로써, 다른 이는 봉사로써, 또 다른 이는 말로써 돕도록 했으며 각자에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기를 요청했습니다.

로잘리 수녀는 언제나 인내와 자비와 예의범절을 권고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너무 비난하지 마십시오…가난한 이들은 여러분의 도움보다는 행동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녀는 이렇게 프레드릭 오자남과 빈첸시오회의 초기 회원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방문할 때 지켜야 할 일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를 통해 그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에게 방문할 가정을 소개해 주면서 그녀는 그 가정에 다가가고 그들을 존경하며 형제·자매로 여기는 그리스도인적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프레드릭 오자남과 로잘리 수녀의 운명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어우러지게 되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사랑의 딸회 사이의 연대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안에서 로잘리 수녀와 프레드릭 오자남의 협동이 매우 긴밀했던 만큼, 로잘리 수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프레드릭 오자남의 삶과 업적을 되짚어보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Hess 지음, 프레드릭 오자남, 125쪽)

프레드릭 오자남은 1853년 9월 8일 선종하고 1997년 8월 22일 시복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기념일은 로잘리 수녀의 생일인 9월 9일입니다.

1856년 2월 7일, 로잘리 수녀도 선종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약 5만 명으로 추산되는 대규모 인파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녀는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의 소박한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녀의 묘지 위에는 “우리의 착한 어머니 로잘리에게, 그녀에게 감사하는 부유하고 가난한 친구들로부터”라고 새겨진 십자가가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묘역에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와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악의 이 겸손한 딸에게 꽃과 기도가 계속해서 바쳐지고 있습니다.

 

시복식

로잘리 수녀는 총명하고, 예리하며 의욕적이고 강하고 성실하며 사랑이 넘치는 매우 특별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좋은 성격과 유머감각을 타고 났습니다. 그녀의 에너지, 창의력, 신의와 용기는 그녀를 아는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빛났습니다. 교회는 2003년 11월 9일 로잘리 수녀를 시복했으며 이제 그녀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서 우리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모범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 로잘리 랑뒤 수녀-불타는 심장을 가진 사랑의 딸회 수녀, 에뒤송 뒤 시녜, 2003년판)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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