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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점진적(漸進的)으로 하라(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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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20-03-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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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풀어가는 것. 헤아리는 것. 받아주는 것. 살라버려고 삭쳐서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결심하고 고백하는 것에 사죄(赦罪)받으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판관이 죄나 잘못을 용서하면 죄를 용서받아 방면(放免)됩니다. 마찬가지로 상대의 죄를 용서할 때 그가 자유로워지고 해방이 됩니다.


상대를 용서한다? 실상 용서를 바로 급작스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모든 상처와 소외를 극복하고, 완전한 자유를 얻은 분들에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당신을 못박았던 사람들을 아버지께 용서해 주십사고 기도하였고,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도 돌을 던지는 그들에게 죄를 지우지 말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나 스테파노는 포악자들이 자신들을 죽이는 무지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용서는 단계, 계단이 있습니다. 점진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상대가 음모와 흉계로 나를 손상시키고 절망의 구렁으로 몰아 넣을 때, 그를 바로 용서한다? 그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행위할 수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규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갖가지 일로 살면서 얽힌 인생길에서 서로 일생 원수나 웬수로 살아가기는 쉬워도, 그들 이해하거나 수용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그 단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에 완급(緩急)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느슨한 용서의 단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상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린 나무가 있습니다. 묘목이나 어린 나무입니다. 이런 것들은 단번에 한번에 모두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나무거나 고목은 단번에 한번에 살필 수 없습니다.


큰 나무는 곧바로만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가지가 나 있고, 자세히 보면 가지나 줄기 껍질에 까지 자라온 역사의 흔적이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있었던 상처의 흔적도 보이고, 그 상처를 아물기 위한 혼신의 노력도 보게 됩니다. 큰 나무나 고목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성장의 역사가 있습니다.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살아온 역사 만큼 기쁨도 즐거움도 있지만, 아픔과 상처도 있습니다. 희열과 회한도 함께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단번에 해결해 해치우듯이 그렇게 단번에 풀거나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현재 그 세월에, 그 나이에 그런 말과 행위를 했다면, 그 말과 행위는 그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지금껏 그의 것으로 그의 성품으로 자리를 잡아 온 것입니다. 상대로부터 상처받은 것은, 그의 인생의 여정에서 소외되고,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굴절의 아픔과  역사를, 그것을 내가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단번에 풀고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동시에 그도 그렇지만, 나 자신도 지금 세월까지 살고, 나의 인생 여정에서 그와 비슷한 여정을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도, 나도 굴절된 역사와 상황 속에서, 여태껏 해결하지 못한 상처와 아픔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세월만큼 자라왔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있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으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오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개선해 왔고, 또 영적인 구원에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용서와 불용, 죄와 미움을 식별할 수 있으며, 그 용서의 단계를 갖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느님의 은총속에 살아가면서, 용서의 길과 그 비전이 있다는 것. 지금은 어렵지만, 용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축복인지 모릅니다.


용서는 바로, 곧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 훗날 용서한다는 마음만 가져도 좋습니다. 그 희망만으로도 족합니다. 지금 그를 이해하거나 수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용서한다는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한편 가능하다면 용서의 단계, 계단을 만들어 하나하나 풀어가는 지혜를 갖기를 바랍니다. 계단을 밟다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계단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요?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용서의 믿음 만으로도 용서의 시작입니다. 용서는 점진적으로 행합니다. 오늘, 용서를 못했다하더라도 나의 허물과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지금 용서의 믿음이 있으면, 그것이 용서를 흐르게, 그것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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