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영성적 감사!|(20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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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3회 작성일 20-03-11 09:43본문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살다보면 즐겁고 기쁜 일이 있지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넉넉지 않고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즐겁지 않게 시작합니다. 부담을 갖고 편하지 않게 시작합니다. 그 일이 내 일이고 내가 해야 할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오늘 만족스럽지 않게 시작하는 일, 그 도중, 그 과정과 결과가 말끔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좋다. 잘했다.' 보다 내일을 다시 걱정하게 됩니다.
감사. 무엇이 감사일까요? 실제로 감사는, 감사 '자체'입니다. 감사하는 순간에 '감사'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감사' 그 감사가 없으면, 그것은 '감사'가 아니고, 감사함을 살 수 없습니다.
감사는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린다고 해서, 있다고 해서 감사가 아니라, 감사는 그것이 없어도, 지금 가지 못하거나 누리지 못해도 '감사'하는 마음. 그 감정입니다.
예를 들어 수천 수만 수억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가 있다고..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별로 가진 것이 없고, 느추한 곳에 살고, 단지 먹고 사는 것이 부실하다고 해서 감사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을까요? 감사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감사'하면 감사고, 지금 이 자리에서 '감사'할 수 없다면, 불편함과 부족인 것입니다.
좋은 이들을 만났다면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날씨와 쾌청을 만난다면 감사합니다. 내가 말할 수 있고, 친교를 나누며, 기쁘게 담화할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기쁨이면 감사입니다. 그것은 다음, 다음 시간과 장소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이가. 이 자리에 이 시간에 감사하지 못하는 이가. 다음 시간과 다음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나를 피곤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 자기 법과 논리에 붙잡힌 사람, 자기가 선호하는 말과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고통과 절망감 등, 그 결과를 가져오는 지 모르는 사람, 자기가 하는 행위가 악하고 불의한 일인 지 모르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 할 뿐 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사람을 앞에 두고,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냥 감사한다는 것은 어쩔수 없이 하는 것이고, 실제 감정은 '감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때의 감사는 영성적 감사입니다. 영성적 감사는 믿음과 은총의 감사입니다. 하느님 성령께 신뢰를 두는 감사입니다. 비록 그가 나를 힘들게 하고, 설령 절망에 몰아넣는다 해도. 믿음으로 감사할 때, 궁극적으로 축복으로 귀결된다는 믿음입니다. 이 영성적 감사는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 드리는 감사며, 성령의 인도와 역사를 청하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이 영성적 감사는 나와 그, 우리와 상대들의 구원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그의 죄와 악행의 감사는 그 죄와 악행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와 그 권능에 맡겨 드리는 기꺼운 믿음을 말합니다.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감사는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구원과 연관됩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의 권능과 역사가 우리에게 오게 합니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감사는 '감사'함으로, 지금 이자리의 감사를 초대함으로 이루어집니다. 현장에서 감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영성적인 감사에, 그 은총에 따라 감사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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