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진리, 생명을 위하여(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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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0-03-13 09:48본문
금요일은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의 날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기르는 것은 살리기 위함입니다. 가르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종교를 갖는 것도 살기 위함입니다.
길을 걸어가는 것. 참됨을 따르는 것도 살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살기 원함이지 죽기를 바라는 이유가 어디있을까요? 생명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죽기를 바라는 이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무엇이나 살기 바라고 그것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 살도록 키우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살도록 가르치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사람들을 인도할 때, 살도록 이끄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아픈이를 치료할 때, 살도록 하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이웃에게 봉사할 때, 살도록 하십시오.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
실상 내가 산다는 것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삶에서 나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가족과 주위에 공동체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으며, 걸림돌과 장벽이 있는데 나만 그 안에서 희희낙낙한다면 그것이 무슨 즐거움이고 재미이겠습니다.
내가 산다는 것. 우리가 산다는 것. 그것은 모두의 삶. 생명을 위해서 입니다.
생명을 전달받았지만, 그 생명을 주신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이 공동체로부터 왔고, 하느님으로부터 탄생했으니, 그것이 나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생명을 부여받지 않았다면, 머물수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유아독존 생활, 나만의 생활, 유일 만족의 생활. 그것 자체가 선이 아니며, 진리가 아닙니다.
누구와 대화하고 만날 때, 그와 관계와 친교를 맺을 때, 그 목적은 살아있음. 그 생명에 있습니다.
만남 자체가 생명을 위한 만남입니다. 그런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만날 때, 더러운 영에 묶여있는 사람을 해방시켰습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온갖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길과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만남은 곧 살리는 일. 그 생명에 목표들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을 꾸짖을 때도, 그들의 율법의 허세와 허영, 바르지 못한 해석과 적용을 꾸짖었습니다. 그분은 율법이 정의에 근거한 사랑의 말씀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 세상이 생명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만남, 그 목적이 무엇입니다. 관계와 친교, 대화와 협력 그것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곧 생명을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라고 하신 것. 그것은 생명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말과 행위과 비전은 그 생명에 둡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과 그 생명을 얻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기쁘고 행복하며, 온갖 선물을 받고, 오래 살게 됩니다.
금요일은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의 날입니다.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오늘 나의 생각과 말, 만남과 친교, 그 활동이, 그 목표에 생명에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에 마음을 두면, 기쁨이 즐거움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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