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그 과정이(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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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20-03-19 10:39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까치가 높은 나뭇가지 사이에 가지를 물어다가, 둥지을 만들었습니다. 강풍이 부니 나무와 가지가 흔들리면서 둥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까치가 안타깝게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작년에 만들었던 둥지에서 가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까치는 종종 작년 둥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새로 둥지를 만듭니다. 건강한 생산활동을 하기 위함입니다. 까치는 이런 모든 조건을 잘도 견딥니다. 가지가 떨어지면 다시 모을 것입니다.
용서는 건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의 건강한 생활이란 영적인 건강과 기쁨을 말합니다. 용서를 통해서 정신적, 정서적,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고, 또 그 용서의 경지(境地)에 들어서면, 상대의 잘못이나 죄를 탕감해 주는 것. 그에게 묶인 것. 묶여 있는 것을 풀어주고 해방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풀리고, 풀려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 나의 영육간의 건강을 되찾는 것입니다.
용서에 있어서 상대를 바로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에 대한 화남과 분노가 있기 때문도 있지만, 상대방이 그의 잘못과 그의 악습을 바꾸지 않는 것 때문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감정, 곧 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상대에 대한 감정이 있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의 허물이나 잘못, 악습이나 그런 행위를 바꾸지 않고 있으며, 바꿀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궁극적 용서할 수 있음은, 상대가 그런 잘못과 악습이나 악행을 바꿀 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바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자책감이나 자격지심을 가지긴 하지만, 그렇게 마음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괴로워하거나 종교적 용서를 못함에서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가 허물과 잘못, 악습과 불의함과 정의롭지 않음을 가지고 있고, 또한 고치거나 개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여지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대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의 구원의 정의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으로 부터 용서받아, 구원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상대도 하느님 앞에 구원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잘못과 허물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악행을 고쳐야 합니다. 나 자신의 용서와 화해의 밭을 건강하게 하고, 잘 일구어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죄를 지으면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화해하고 용서의 길을 걷는다면, 상대에게도 그렇게 적용하고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가 잘못하고 있고, 악습이나 그릇된 행동을 할 때, 그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그것의 잘잘못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면 여기서의 충고나 권고는 그를 낫게 하고 건강하게 함이지, 그가 건강하게 하는 것. 그 건강의 밭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그가 거기서 탈피하고 탈출해 나와야 그도 자유롭고 해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가 거기서 나올 때, 주님 앞에서 자유로워지고, 더 나아가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를 잠시 유보하고, 그를 위해서 권고하거나 충고하는 것은 그의 영육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 하느님 나라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잠시 용서를 유보하는 것은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건강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오히려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의 구원을 위해 도와주는 것입니다.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은 지혜로운 생각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음 일수도 있습니다. 용서의 원천과 치유와 회복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종교인이니까 용서하라.고 하는 것. 너는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니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이가 자기 스스로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바꾸지 않고, 용서를 강요하거나 그것을 빌어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었다면, 바로 회심하고 주님께 돌아가기 바랍니다. 동시에 상대에게 회심하고 돌아가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그 도움을 위해서 용서를 유보하는 것은 그를 살리는 과정입니다.
수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성령을 받은 이는 지혜롭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용서도 지혜롭게 합니다. 그래서 상대가 허물과 죄에서 완전히 탈피하도록 돕습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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