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깊이와 넓이(2020.12.1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84회 작성일 20-12-17 09:59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는 깊이가 있고, 넓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깊이가 있고, 또 넓은 것이기도 합니다.
용서할 때 바로 용서할 수 있지만, 그렇지 바로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용서를 말로 할 수 있지만, 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용서를 지식으로 말할 수 있지만, 지혜로서 보아야 합니다.
용서하고 이해하지만, 그의 정서와 감정을 보아야 합니다.
용서를 해야 하지만,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을 보아야 합니다.
용서하면서 동시에 생명과 구원의 길을 보아야 합니다.
그는 지식이 있고 영예가 있습니다. 지위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가르치기도 하고 인도하기도 하고 선생 역할도 합니다. 사랑도 말씀도 용서도 선도 진리를 가르칩니다. 매사에 앞서서 말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그의 지식과 교훈을 알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지식과 교훈은 맞은 것 같고 적절하지만, 잘 생각하고 식별하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법과 논리와 지식은 맞는 것 같지만, 한편 말은 지식과 논리로 갖추어져 있어서 바른 것 같지만, 진리의 알갱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말과 지식을 많은 이들이 선호하고 받아들이지만 바르고 참됨이 결여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말과 행위를 하는 이의 말을 듣고자 하지만, 지식과 교훈은 옳은 것 같은 데, 평화와 선이 결여 되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의와 공정, 삶과 생명의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실상 용서는 사람을 일으키고 살리고 생명의 마음입니다. 용서는 순수하고 성실하고 참되고 거룩해서 그 용서의 말을 듣는 이들은 회복되고 치유되고 살아납니다. 용서는 그런 생명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는 용서의 원천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들을 때마다신뢰하며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지식있고 영예가 있고 권위가 있어도 그의 말을 진심으로 듣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진리를 말하지만 그 말씀을 참으로 알아듣게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용서를 말하지만 용서의 샘물로 받아들이가 어렵습니다. 그런 이의 말과 가르침에서 바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용서. 그 용서는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참된 일을 시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는 내가 선한 일을 시작하는 데에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는 내가 정의를 찾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삶을 실행하는 데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는 내가 지금 거룩함을 찾고 주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는 내가 지금부터 나를 살리고 다른 이를 살리는 데 힘을 기울이는 데에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는 내가 지금부터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고, 그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습니다.
용서. 그 용서가 생각과 말로 회자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내가 선과 진리를 바로 지금부터 실행하기 시작하기부터 입니다.
용서는 참되고 선함으로 실행하는 것부터이지, 나의 지식과 말과 교훈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순수하고 성실하고 참됨 마음으로 공정하게 용서를 실행하기 시작하십시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이해 못할 이를 용서로 시작합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참됨으로 이끌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다가갑니다. 용서가 생명이며, 사람을 살림을 믿고 걸어갑니다.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