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덮어주는(20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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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99회 작성일 20-11-05 10:16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생의 끝에서도 덮어주는 것입니다. 낙엽이 수북한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푹신 푹신한 길입니다. 딱딱한 바닥을 걷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발부터 머리까지 안락함을 느낍니다.
용서는 나무의 일생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풍성해집니다. 그러고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풍성한 옷을 입고, 그러고는 땅에 떨어져 수북히 쌓입니다. 땅을 덮어주고, 땅과 식물들의 안온한 거처를 만들고, 새로운 탄생을 위한 거름이 됩니다. "아! 그렇구나 나무가 스스로 모두와 함께 살게 하고 살리는 구나! 그가 내는 싹도 잎도 꽃도 줄기도 그리고 아름다운 단풍 마침내는 떨어지는 낙엽, 수북히 쌓이는 재색의 낙엽 모두가 살았고, 살리는 생명의 길, 그 생명의 양식이구나!" 내가 용서한다는 것은 단지 한 기간, 어떤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 풀어가는 가운데 나를 내어가는 가운데, 내어주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생의 길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새싹의 파릇함과 같음도 있습니다.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찬란한 단풍도 수북히 쌓이는 낙엽의 온존함도 있습니다. 그때 멋을 드러내고 자랑을 삼고, 그 찬란함도 보였습니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고 또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끝내는 낙엽이 되어, 수북히 떨어지는, 그리고 다음의 생을 위한 비움의 생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수북히 쌓이는 재색의 낙엽을 바라보면서, 내가 용서할 수 없다거나, 용서해서는 안된다거나 결코 그럴 수 없다거나 하지 않고, 결국은 내가 내려놓고, 최종에 내가 떨어뜨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용서의 완성임을 깨닫습니다. 왜 인생의 길을 가는데 회한이 없겠습니까? 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왜 나만 그의 허물과 악행과 그릇됨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많은 생각과 상념과 질문을 하게 됩니다.
실상 내가 용서하는 것은 내가 우둔하거나 깨닫지 못하거나, 그의 죄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가 바꾸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를 단지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가 용서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에서 용서가 그가 살아나는 것임을, 그것이 생명이다. 라는 것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지난날의 그로 부터 그의 악행과 행위와 그릇됨으로 부터 받은 고통과 아픔을 털어버리십시오. 힘껏 던져버리십시오. 그러고는 잊어버리십시오. 용서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를 측은하게 여기고, 이 모든 것 던져버리고, 새롭게 용기 있게 일어서서 새 길을 가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의 새길을 축복하시고,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수북히 쌓이는 낙엽을 밟으면서 걸어가며 느끼는 풍요. 그 안온함과 안락함. 위로와 기쁨입니다. 떨어진 수북한 낙엽은 모두를 살립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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