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과정의 삭침(2020.10.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26회 작성일 20-10-22 09:42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삭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우거나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삭이다'점점 형태가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삭월 점점 달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를 삭치다.라고 하면 죄을 지우저나 없애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듣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자녀를 용서해 줍니다.
하느님 앞에 죄를 짓거나 잘못을 했을 때, 죄와 잘못을 고백하고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뒤에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런 의미로 고해성사를 보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동시에 인간 관계에서도 잘못을 고백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함께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용서를 생각하면, 어떤 일과 사건은 바로 수용하고, 바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생각하면, 어떤 사람가 대상에 대해서는 그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으며, 사해 줄 수 있습니다.
용서를 생각하면, 어떤 이가 한 일과 행위에 대해서, 그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여기면 바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풀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일과 사건에 대해서 바로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그의 악행과 행위를 이해도, 수용할 수 없고, 그의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일과 행위가 그 대상과 정도, 그리고 심각성 때문에 지금 용서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상대가 부지부식간에 자신의 허물과 실수로 어떤 잘못을 한 것은 무엇이든지 용서하고 사해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에 용서가 늦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위치, 영예,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악행과 거짓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용서라는 광의의 뜻 때문에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자격지심을 갖고 스스로 마음을 자책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용서에서,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성찰과 회상의 사함이어야 합니다. 무조건 용서라는 것은 문제를 낳을 수 가 있습니다.
예전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늘을 훔칠 때, 그 훔침의 거짓을 지적하지 않고 나서, 후에는 더 큰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행과 악습에 대해서, 처음부터 성찰과 회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용서는 성찰과 회심을 통해서 용서의 원천으로 나아갑니다.
용서할 때, 무엇보다도 선과 정의, 생명과 평화, 구원에 따라 성찰하기 바랍니다. 그 성찰을 통해서 옭아매진 실을 한올 한올 풀어가듯이 풀어가며 용서하기 바랍니다.
모든 허물과 잘못, 죄와 악행을 바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용서를 늦추더라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용서의 과정이 필요하고, 이런 과정들이 해결되고, 화해될 때, 용서가 가능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성령께 의탁하십시오. 성령의 평화와 사랑을 입으십시오. 성령의 진리와 공정을 몸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성찰과 함께 용서의 길로 나아가십시오.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