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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길 생명, 가난 알아차림(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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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16회 작성일 19-11-29 09:55

본문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진리의 길을 아는 것. 진리를 통해서 생명을 얻습니다. 그 생명을 하느님 아드님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가난을 바라는 이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이는 없습니다.


부유함을 바랍니다. 부유함을 좋아합니다.

가난한 이가 빈곤한 생활을 하는 이가 있고, 가난한 이가 부유한 생활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부유한 이가 빈곤한 생활을 하는 이가 있고,  부유한 이가 부유한 생활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유합니까? 아니면 가난합니까?

모두가 부유한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넉넉하고 후한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가난한 사람. 그는 부유한 사람입니다. 곧 줄줄알고 나눌줄 알고 베풀줄 아는 사람입니다. 줄 줄 아는 이가 부유한 사람입니다. 곧 나누고 베풀줄 아는 이가 부유합니다. 그는 가지고 있고 넉넉한 사람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지만, 누리고 있지만 줄줄 모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곧 가난뱅이라고 합니다. 매우 째재한, 자린고비입니다.


진정한, 가난을 사는 사람은, 자기를 비울 줄 알고, 비움과 동시에 나룰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고 이따가가 아니라 지금입니다.


성경에서도 행복을 말합니다. 하늘나라 행복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이 것이다."

           마태 5,3

진정한 가난은 곧 마음의 가난을 말합니다. 물질적, 외적인 소유의 가난을 말하기도 하지만 더 마음의, 인간의 영의 가난을 말합니다. 마음. 곧 인간의 영의 가난함은 물질적, 외적인 소유의 차원의 가난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마음의 가난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도 부유할 수 있고, 물질적인 부자도 가난할 수도, 부유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의 영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그 믿음 때문입니다. 잠깐 소유하는 현세의 물질적, 소유와 부가 영원한 생명의 길에 보탬이 되면 참 좋은 것이지만, 반대로 물질의 소유와 부가 오히려 그 영원한 생명을 방해하고, 그곳에 들어설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부유함은 가련하고 비천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면, 소멸하는 현세의 물질과 부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그 행복을 알고 있기 때문이비다. 그러나 그것, 세속 물질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나는 가난, 그 영성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난, 그 가난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의로움과 참됨에도 참여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의 하늘 나라의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0


가난한 사람은 사랑과 자비에 예민하고, 선과 진리에 함께하며, 정의와 평화에 동참합니다. 자기의 자선과 선과 정의에 나눔을 할 때, 세속적인 부가 축소되고, 시간과 에너지와 육체적 고통과 어려움이 오는 데도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진정 자기를 비우고 내어놓는 가난함으로 부유함을 보여줍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자기의 시간, 여정, 금전, 치료, 희생, 돌봄, 회복까지 돌보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루카 10, 29-37). 부자와 거지 라자로의 비유에서 호화로운 부자는 자기 문 앞의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를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부자는 불길 속에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라자로의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혀를 축여달라고 하였습니다(루카 16,24).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물질과 부를 영원한 생명으로 알고 사는 가난한 부자들은 소멸하는 세속적 부가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인생의 허망함과 부질없음을 잊기도 합니다.


진정한 가난, 곧 부유함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현세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것을 비우고 또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과 자비,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 평화와 생명을 함께 나눕니다. 그 자신도 이웃도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한다는 것은 가난을 통하여 사랑과 선, 정의와 평화를 나누고 함께 공유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부자입니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 6


가난은 나눔입니다. 나눔은 기꺼이 줌입니다. 가난한 영의 마음이기에 기꺼이 주고 나눕니다. 영원한 생명을 희망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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