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조화 질서에서(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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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00회 작성일 20-03-04 10:18본문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기쁨. 기도. 감사. 지금 그 일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기쁨 기도 감사는 '지금 그리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상의 조물들을 하나하나 창조하실 때, '보시니 좋더라'하셨습니다. 창조는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의 조물들의 창조하심과 마찬하지로, 나를 바라보면서 또한 '보기에 좋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을 바라볼 때 '보니 좋다'라면, 나는 지금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를 바라볼 때, '보기가 나쁘다'라고 한다면 나의 상태 '별로' 좋지 않은 것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보기에 좋다'도 있고, '불편하거나, 심히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좋을 때는 괜찮지만, 마음이 심히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보시니 좋다' 하셨지만, 내 마음이 창조의 아름다움이 아닌, 곧 조화와 질서가 없이 불편한 상태라면 어떻게 그것을 어떻게 감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감사는 나의 불편, 불안, 답답, 괴로움, 절망, 좌절을 넘어가는 것. 그것을 넘어서 나의 평안, 즐거움, 기쁨. 곧 나의 질서와 조화를 찾는 것입니다.
감사는 나에게. 스스로 나를 볼 때 '보기가 좋다'할 때 감사입니다. 감사는 질서있는 나, 조화로운. 아름다운 나를 찾을 때 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소외시킵니다. 흉을 보고 뒷 말을 합니다. 뿐 만 아니라 혼자서만이 아니라 무리지어 수군거립니다. 훙계도 꾸밉니다. 그럴 때 나의 감정과 마음은 심히 불편하고 괴롭기 까지합니다. 감사는 커녕 화가 납니다.
그럴 때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용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게 뒤로 이야기 하지 말고, 떳떳하게 말하라고. 나는 미숙하고 부족함이 있지만, 그대는 잘못되고, 그릇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유로워지고 스스로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의 질서와 조화를 되찾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오육십이 되었고, 그 이상이 되었는 데, 자신의 말이 상대을 폄하하고, 흉이나 뒷말을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고있는 말의 뜻과 결과를 모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스스로에게 어리석음이고, 또 어리석은 결과를 모릅니다. 초라한 사람. 그리고 얼마나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지를 모릅니다.
왜냐면 그 이유는 그가 여태껏. 말하는 의미를 모른 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말하는 의미를 몰랐다기 보다, 그동안 그에게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도자가 없었다.는 것. 그것이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이 든 이라 하더라도, 그에게 그런 말의 뜻을 깨닫게 하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그에게 그 인도자가 있을 때 그가 질서와 조화를 찾습니다. 그도 감사할 수 있고, 또 나도 감사합니다.
상대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보았을 때, 단지 꾸짖음과 단정이 아니라, 그가 그것을 극복하고 개선되고 또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악습과 잘못된 행위가 바꿔지고, 그것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도 그도 조화와 질서를 찾아가는 길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니 좋다'하신 것처럼, 나도 그도 우리 모두도 '보기가 좋다'여야 합니다. 그것이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 입니다. 실상 그렇게 될 때 감사입니다.
창조의 질서와 조화로,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 모두가 회복이 될 때, '감사'입니다. 그리고 기쁨입니다. 그리고 참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수요일은 감사의 날입니다.
"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감사는 나와 너, 우리와 그리고 모두. '보니 좋더라' 그 평화에서, 그 질서와 조화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그 일과 대상에 대한 단죄와 꾸짖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왜곡에서 탈바꿈하고,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도와주는 인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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