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있음을 바라보라(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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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19-05-09 09:30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소나무 등 나무들이 건강할 때는 다른 줄기들이 오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큰 나무들이 약해지게 되면, 줄기들이 큰 나무들을 타고 오릅니다. 그렇게 되면 오래지 않아서 큰나무들도 서서히 죽어가고 마침내는 넘어지고 맙니다. 나무들은 자기들이 자라고 성장할 때를 알고, 또 스스로 쓰려져야 할 때를 압니다. 쓰러져도 다른 식물들의 거름이 됩니다.
자연은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풀고, 스스로 화해하고 만들어 갑니다.
용서는 자기를 스스로 알 때 스스로 화해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알지 못하면 자기와 화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것처럼 상대를 알아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용서가 가능합니다.
만일 상대를 용서할 수 없다면, 지금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으며, 또한 상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딱딱하다면, 딱딱함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차갑다면 차가운 역사가 과거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둡다면 어두운 뒤안길이 있었습니다.
깜깜하다면 깜깜의 지난 날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가 부드럽다면 부드러운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가 따뜻하다면 따스함의 지나온 길이 있었습니다.
그가 밝다면 밝은 뒤안 길이 있었습니다.
그가 찬란하다면 매우 밝은 과거 역사가 있었습니다.
현재, 그의 마음과 말과 행위, 곧 성품에서 그의 모습은 과거의, 뒤안 길, 지난 날의 흘러온 과거 역사의 표현입니다. 나는 과거의 나의 그런 요소가 있었고, 그도 과거의 그런 요소가 있었습니다. 현재 나의 표현, 행위는 과거의 울퉁불퉁한 씨앗의 발아와 자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은 내가 과거에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과거에 내게 그런 채워지지 않은 분노의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쉬워하거나 부족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이 시작이고, 오늘이 길이고 그리고 지금이 지름길입니다. 오늘부터 새로 걸어가고 그려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터 부드러움을 시작하면 됩니다.
이 시간부터 따스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사랑하고 용서하면 됩니다.
지금 이 자리부터 선하고 정의롭고 진실하면 됩니다.
곧 지금이, 오늘이, 현재가 길이고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좋은, 더 나은 아름다운 성품이 시작됩니다.
화해는 지금부터입니다. 용서도 지금부터 입니다. 이것이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고, 활동이 되고,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스스로 지금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것. 나를 스스로 아는 것. 나를 스스로 알고 바르게 나아가고 연습하는 것. 그것이 화해의 길이고, 또 용서입니다.
용서는 나를 스스로 알고, 선의 길로 노력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나를 알 듯이 상대에게도 스스로 알도록 하고 선으로 스스로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용서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하였듯이, 용서를 하고, 용서를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스스로 자신의 과거, 뒤안 길을 아는 것입니다. 선으로 그 뒤안길을 바르게 회복하는 길입니다. 자신 만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고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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