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선. 사랑과 정의(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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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49회 작성일 20-01-17 09:48본문
금요일은 길과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길은 바른, 참된, 옳은 목적지를 가는 통로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각기 자기가 갈 몫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거룩한 자질과 재능, 능력과 은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품성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랄 때 부터, 가정과 사회, 곧 공동체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이런 천부적 자질이 드러 나는 데, 어떤 가정과 부모, 공동체에서는 그것을 쉬히 이해하거나 식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나 청소년 시절에 가정이 결손될 때 이런 하늘로 부터 오는 자질들이 외면당하게 됩니다. 또한 부모나 가정들이 자신들만의 이상을 쫓다가 이 하느님께서 부여한 그 영적 자질을 놓치고 성장시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흔히들 청소년이나 청년들, 이미 장년이 된 사람들의 굴절된 생활과 매우 미흡하고 허약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이 해당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말하고, 또 규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게 부모와 자녀, 부부간에, 한 가정에서 어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그것이 어찌 그 사람만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사람만이 책임을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할까요?
우리는 이런 가정에서 또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떤 허약하고 미흡하며, 또 다른 식구들과 달리 그가 그렇게 굴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 굴절과 결루(缺漏, 이지러진 흐름)을 찾아가 해결의 실마리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해결을 가족이 할 수 없다면, 상담자나 조언자를 찾아가거나, 영적 심리적 인도자를 찾아가야 할 것이며, 비록 길은 먼 것 같지만,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길, 가르침의 길은 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종교인이든 일반인이든 이 선함의 이 길에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 선함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굴절과 허약과 미흡한 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선함이란, 사랑과 정의의 품성을 말합니다. 사랑없이 정의 없습니다. 정의없이 사랑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바로, 그 사랑에 정의가 포함됩니다. 사랑과 정의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의 정의롭지 않은 사랑이 어찌 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롭다고 하면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정의가 어찌 정의이겠습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무조건적 사랑이 필요하지만, 그 사랑안에는 정의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무조건적 사랑도 정의가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랑에 훼손이 옵니다. 더불어 정의를 실천하면서도 사랑이 결핍된 정의도 궁극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째 쭉정이가 됩니다. 정의로운 이는 사랑도 풍부하고 또 넘쳐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과 정의 본성입니다.
길을 가는 이는 사랑과 정의를 따라가야 합니다.
사랑은 자비로 나타나고, 자애로 나타납니다.
정의는 공정으로 나타나고, 평화로 나타납니다.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비와 자애를 실천하고, 공정과 평화를 용기있게 실천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이 사랑과 정의에 민감하고 도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가는 이를 통해서 구원의 빛이 비추어집니다.
길을 떠나는 이는 양손에 사랑과 정의를들고 떠나갑니다. 길을 가는 이는 사랑과 정의 길을 갑니다.
금요일은 길과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오늘 길을 떠나며 사랑. 그 자애를 생각합니다. 오늘 길을 떠나며 정의, 그 공정을 생각합니다. 사랑과 정의의 형평을 이루면서 평화를 이룹니다. 그렇게 해서 주 그리스도의 길을 갑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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