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성령의 힘으로(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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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03회 작성일 19-02-28 09:32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 예수님은 용서를 바라신다. 꼭 용서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용서가 쉬운가? 용서할 수 있는가?
나를 조롱하고, 뒤에서 말을 퍼뜨리고, 음모를 꾸미고, 또 공격하고 폭행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사람을 악의적으로 말하고, 그렇게 폄하하는 사람을 바로 수용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사람의 존엄성과 영예가 흔들리고, 그로 인해 참됨 아름다움이 혼돈에 빠져들을 때 그에게 용서를 해줄수 있는가?
일제의 침탈. 민족에 대한 침해, 역사의 왜곡, 각 분야에 대한 약탈. 곧 정신, 문화, 종교, 언어, 경제약탈, 군대 동원, 성의 침탈 등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 시기에 있었는가? 백성과 공동체에 대해서 민족, 나라, 모든 문화에 병폐를 가져왔는가?를 생각하면 그냥 용서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가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실상 폭행하고 악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 그냥, 무조건 용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고, 또 있을 수가 없습니다.단순히 상대가 생각이 부족하고 깨달음이 부족해서 나를 힘들게 한다든가, 고통스럽게 했다면 그것은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미숙과 약함 때문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의도된 잘못된 불의한 공격과 폭행은 단순한 실수나 잘못을 넘는 것이어서 그것을 그냥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는 용서 이전에 잘 잘못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정의 불의, 공정과 불공정을 따진 이후에, 곧 옳고 그름이 해명을 통해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잘 잘못을 가리는 것은 상대의 바른 존재감 곧 존엄성, 참된 영예를 되찾기 위해서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만 나는 올바로 설수 있고, 그동안 상대의 잘못과 죄가 규명될 때, 상대도 바른 인생길을 걸어가고, 영적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용서라는 것은 모두의 생명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 나라,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도 의도와 가치에 따라서 용서의 방법이 다릅니다.
상대가 단순한 실수나 잘못이 아니고, 불의의 의도, 가치에 따라 그렇게 했다면 나 자신의 건강한 회복과 나와 관련된 이웃들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더더구나 그 사람의 앞으로의 건강한, 실실한 생활을 위해서도 해명, 규명과 함께 용서를 위한 과정과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런 연후에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에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궁극적 용서를 바라시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십니다. 성령안의 용서는 인간의 죄와 악습, 폭행과 폭압, 불의와 부정의를 규명하면서 이루집니다. 그런 풀어감의 노력과 함께 이루어지는 역사가 성령 안의 용서입니다.
얼었던 강물이 서서히 녹으면서 서서히 풀려가듯 말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고, 사랑하고 자애를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나 그가 궁극적으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한꺼번에 단번에 푸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풀어가고 온전히 풀어진 다음에 온전히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청합니다. 그런 성령의 식별과 분별력을 달라고 청합니다.
오늘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 2-23
성령의 지혜와 은혜를 청합니다. 용서의 깊이를 깨닫고자 합니다. 성령의 지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용서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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