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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자유 풀어감(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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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47회 작성일 19-01-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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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께서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용서(容恕)는 놓아줌, 풀어줌 등 해방의 의미가 있습니다. 용서는 죄와 잘못을 놓아주고, 풀어주는 뜻이 있습니다. 묶었던 상대를 풀어주고 놓아주는 것입니다.


용서의 대상은 상대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너'이기도, '나'이기도 합니다.

용서가 상대이지만, '너'라는 상대만이 아닙니다. 상대는 곧 '나' 스스로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상대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가 내게 잘못하고 죄를 지은 것이지만, 용서하는 것은 스스로인 '나'입니다. 내 마음과 감정과 가치에서 상대를 용서하는 한 상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과 감정, 교육의 가치에서 수용할 수 없으면 상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의 마음과 감정, 이성과 가치, 정의와 공정,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정리해야 상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나 자신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 것이고, 그 풀어감에 따라서 상대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서는 '나'부터 이루어지는 것이고, 내가 풀어가는 가운데, 상대에게 대해서도 풀어갈 수 있고, 점진적인 용서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묶여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굶주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헐벗고 있음을 봅니다.

고독하고 방황하고 있음을 봅니다.

병들어 있음을 봅니다.

감옥에 갇혀있음을 봅니다.


우선 나 자신의 묶임과 소외와 가난과 고통을 볼 수 있을 때, 나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나를 풀어가는 사람은 상대의 굶주림 목마름, 헐벗음과 방황, 병듦과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상대의 이런 묶임과 숨막힘과 눌림 등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용서는 우선 나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풀어갈 때, 상대를 풀어줄 수 있고, 상대를 풀어가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나'를 풀어가야 합니다. 내가 풀어감의 정도에 따라 상대를 풀어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풀지 못하면 상대를 풀어줄 수 없고, 그만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풀어가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기도와 함께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사랑과 자비, 정의와 공정의 도전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과 함께 나도, 상대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나부터 풉니다. 내가 푸는 것 만큼 상대에게 풀 수 있고, 상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풀음을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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