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자기 허약과 앎(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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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4-10-18 09:26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우리를 알고, 그리고 모두을 안다. '안다'는 것은 그것을 풀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아야 다가갈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당황하고 두려워 하고 다가서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알고 있습니까? 나라는 존재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의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 무엇을 모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또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나는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이것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안돼!" 하십니까?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그것을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한편 어떤 것은 수월한데 어떤 것은 무디고 뎌디고 또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사실 우리가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른 이가 그것을 한다면 나도 또한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와 그 은총의 선물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그 은사와 은혜를 어느 순간 기간 동안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알면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은사와 은혜를 깨닫고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일과 만남과 과제와 관계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남 중에, 대화하고 일에서 그 과제를 수행합니다. 잘 할 수도 있고 못할 수 도 있습니다. 그것을 도중에 포기할 수도 있고, 애당초 시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잘하거나 못하거나 도중에 포기하거나 더욱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은혜를 잊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주님을 믿는 이면 누구에게나 당신의 은총의 선물을 주신 것을 알고 그것이 하느님께로 부터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천부적으로 주신 것임을 알고 또 믿으면 멀리 치우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은총에 은사와 은혜에 감사하며 작고 적게라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남과 대화 중에 나의 미숙함이 보입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해야할 말과 행위에서 취약하고 말의 논리마저 부족한 나를 봅니다. 나의 자존심과 위치와 영예가 손상될까봐 주저할 수 있습니다. 나의 허물과 부족함. 부끄러움과 실체가 드러날까봐 이야기를 멈추고 고 침묵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그 은혜 속에 사는 이는 비록 말의 논리와 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설령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선하고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용서. 그것은 선함과 참됨에 대한 믿음과 적극적인 용기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에 대한 믿음에서 용기있는 나아감에서 신실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용서는 믿음을 통하여 선과 진리와 정의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과 나아감입니다. 비록 미약하고 부족하고 덜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은총에 대한 감사와 믿음과 그 은총의 선물에 대한 은혜를 통하여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성령께서 활동하시고, 성령의 힘을 통하여 용서의 깊이와 넓음으로 나아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용서하면 용서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다. 말씀을 새깁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과 그 은혜를 깊이 깨닫는 이는 설령, 한계와 부족함이 있어도 모든 것을 넘을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는 제가 당신의 은총과 그 은사를 알고 믿고 살게 하소서. 그 믿음에서 모든 묶임과 눌림과 조임에서 해방됨을 알게 하소서. 그 길을 따라 걷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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