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한 걸음 더(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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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81회 작성일 18-09-13 09:27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죄의 용서는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말씀입니다. 나나 그나 모두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되고, 잘못된 사람이라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용서의 마음에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기꺼이 용서하는 데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용서하기가 어려워도 노력합니다. 기꺼이 용서할 때까지 마음과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나 뿐만 아니라, 너, 그이까지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용서하도록 항구히 노력합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백 마리중 한 마리 잃은 양까지 찾아나서고, 은전 열닢에서 하나를 잃었을 때도 끝까지 찾으며, 잃었던 아들까지 받아주시는 아버지처럼, 모두가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호흡을 할 때, 내 쉬고 들이쉽니다. 날숨 들숨입니다. 들이쉼과 내쉼을 함께 하게 됩니다. 내쉼만큼 들어오고, 들어온 쉼 만큼 나가게 됩니다. 우리 몸이 상처가 나면 살갗이 손상된 만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몸은 몸부림을 칩니다. 세포가 끊임없는 수고와 노력을 통해 복원을 합니다. 손상된 살갗을 복원하기 위해서, 세포는 원상 복귀가 이루어질 때까지 쉴새없이 피과 산소를 가져다가 일을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아픔과 고통을 느끼기도 합니다. 손상된 관계, 아픔의 관계에서 끊임없는 복원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모든 어그러진 관계와 고통과 아픔도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가 내게 고통과 아픔을 갖게 하면, 물리적으로 살갗이 상처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또한 내가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을 안기에 되면, 또 마찬가지로 그가 살갗의 상처의 고통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는 내게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주었다면, 또한 그는 그의 죄와 악행으로부터 영적 상처를 스스로 받은 것입니다. 물론 내가 그의 충격으로 받은 상처가 크고 아프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의 행위로써 그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죄와 악행으로서 나를 가격하는 가운데 그 스스로 죄로 인해 영혼에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맞은 사람은 다리를 쭉 펴고 잠에 들 수 있지만, 때린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잘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의 죄 때문에 영적인 상처를 스스로에게 입혔기 때문입니다. 죄에 규정된 자신은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물리적, 정신적 상처 받음을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잘못을 고백을 받고 내가 회복되는 과정도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궁극적 그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이 행하는 악행도 모르게 자신의 영적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하느님의 선함과 정의를 거스림으로 받을 죽음의 상태을 구해주는 생명의 길을 제공하는 선함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상 내가 받은 상처와 아픔고 크고 막대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인 그가 멸망당하지 않고 생명을 얻기 위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적극적 행위입니다. 사랑에다 더 적극적인 실천이 용서입니다. 사랑에다 용서를 더하기 바랍니다. 사랑에다 용서를 더한 사랑은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시작됩니다. 그분이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자 되라(루카 6,36).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루카 6, 35).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 37).
주님은 주어라.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품에 담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루카 6,38).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해서 더 적극적인 개입과 실천을 바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고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루카 6, 27).
용서는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사랑보다 더 사랑이 용서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나도 살고 그도 살리는 구원의 행위입니다.그가 하느님 앞에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나의 삶과 동시에 그가 살면 더 좋고 나도 기쁨이며 모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더 찬미 영광받으십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를 용서하신다(마태 6,14).하였습니다. 오늘 용서의 날이 되기를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을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적극적으로 용서를 위한 노력을 하기 바랍니다. 기도하기 바랍니다. 용서의 실천을 실행하기 바랍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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