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무지의 용서부터(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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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67회 작성일 18-09-20 09:28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용서함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습니다.
용서함은 상대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또한 내게도 적용이 되는 일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남아있고, 용서하면 죄가 소멸되고 사라집니다.
어린 나무에 상처의 흔적이 나면, 큰 나무가 되어도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나무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상처를 덮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처는 회복이 되어야 하며, 치유되어야 합니다. 자연 생물도 그렇게 하고, 사람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로 부터 상처를 받으면, 상처에 대한 고통이 생기게 됩니다. 수용 불가한 상처를 받으면 심한 고통을, 절망감을 갖게 됩니다. 상대의 가격으로 상처를 받으면 그것이 해소되고,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상대가 내게 가격하여, 상처가 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그의 무지, 알지 못함 때문입니다. 그가 지식이 있고, 알고 있다면 내게 가격하지 않습니다.
'무지가 사람을 잡는다. 무식이 사람을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인 경우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무지는 자기가 행하는 폭력과 폭행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정의라는 빌미로 그렇게 할 수 있씁니다. 무지는 선도 정의도 그리고 공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지는 사랑과 자비와 전혀 딴판입니다.
무지의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때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 큰 피해을 입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 자신을 십자가 형에 처하도록 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루카 23, 34
예수님을 고발하고 십자가 형에 넘기고, 십자가에 못박는 그들의 무지를 용서하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영예와 지식,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식하지도, 지식의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십자가형에 처하는 길에 확신을 갖고 폭력적 행위에 동참했습니다.
이는 후에 바오로가 된 사울도 예수의 제자들을 그렇게 보았고, 그들을 붙잡으려고 찾아갔고, 일곱 부제 중의 하나인 스테파노를 돌로 치는 데 옷의 증인까지 되었습니다(사도7,58).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그들의 무지를 용서해 달라고 주님께 청했습니다.
"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사도 7, 60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오로는 무지의 율법학자였습니다. 그가 지식을 얻은 것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이유는 무지 때문입니다. 앎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도 모르고 상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상대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고는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행위 자체가 무엇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상처받은 나. 그러나 주님을 알고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나는 무지인이 아닙니다. 주님의 지식와 은혜로서 그 무지의 뜻을 알고 있으며, 그 무지를 어떻게 해결하는 지도 알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나를 앎으로 지식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지식이 있는 앎이 있는 선택된 이들.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용서하기 전, 그의 무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용서하기 전, 그의 무지가 어디서 부터 온지를 생각하가 바랍니다.
용서하기 전, 그의 무지가 얼마나 깊고 오래되었는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용서하기 전, 그의 무지가 그의 인생길에 얼마나 장애가 있었는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용서하기 전, 그의 힘과 폭력으로 상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그 자신을 스스로 해했는지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먼저 나의 무지도 바라보기 바랍니다. 상처받고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무지도 보기 바라고,
또한 상대의 깊고, 오래된, 그의 무의식에 갇혀있는 무지도 보기 바랍니다.
나의 무지와 상대의 무지를 볼 수 있다면, 용서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나를 회복하고 치유하면서, 상대와 화해의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용서 전에 무지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나를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무지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면, 그를 용서할 수 있고, 용서의 길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먼저 내가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다는 무지를 알기 바랍니다. 무엇이 용서할 수 없는가? 내 마음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무지와 그 법이 얼마나 깊은 가를 깨닫기 바랍니다. 용서의 단계로 나가기 바랍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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