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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작게 해결해감(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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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10회 작성일 18-08-30 10:22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14, 6


용서는 죄와 악습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와 악습을 끊는 것. 단절하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막지 못하면 나중에는 큰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작은 일에서 큰 사건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 작고 쉽게 해결할 것을 그대로 나두고, 마음을 닫고 있으면, 감정의 누림과 막힘이 커지고 팽창하여 터지는 데, 그것이 큰 사고가 되고 사건이 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나, 나라에서, 국제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으려고 한다는 말. 작은 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큰 것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몸에 상처가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작은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덧이 나서 큰 상처가 되고 몸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작은 것을 잘 다스려야 큰 것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요즘 학교가 매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나 학생들에게는 늘 크지 않은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크지 않은 일을 해결하는 데, 작게 쉽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더 어렵고 고통스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 학생들 간에 서로 갈등이 있습니다. 작은 내용보다 가해자 피해자로 구분을 짓습니다. 가해자 피해자로 규정합니다. 그렇게 하여 판단의 기준을 만듭니다. 물론 문제와 사건을 풀어가는 데 이런 도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크고 작든,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옳고 그름도 선한 조화와 질서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세상적인 제도적, 행정적, 법적인 문제로 곧바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급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종종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인성적, 정신적, 관계적, 공동체적 함께 하는 공간과 만남에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문제를 적극적, 주도적으로 제기하면, 학교측은 받아들여 학생폭력위원회를 엽니다. 경찰이나 사회 조정 관계의 도움을 받습니다. 더욱이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으면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법원에 소송까지 합니다. 

어린이들의 사소한 일을 교사나 학교가 해결할 수 있고, 부모들이 서로 협력하여 인성, 관계, 만남, 미래의 여정을 생각해서 온유하고 자비롭게 해결할 수 있는데도,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학급에서 함께 있고 공부하고 만남하는 가운데 문제과 갈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작고 적은 문제로 인식하여 쉽게 풀수 있고, 또 넘어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면 어린이들이 힘과 가격을 한다고 한다면 그 힘과 가격의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그 힘과 가격이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그 어린이나 학생에게 전승된 것이고, 그 원천이 있습니다. 그 원천인 당사자가 부모일 수 있고, 또 함께 하는 가족일 수 있습니다. 학급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가해자나 피해자 부모들의 돌격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그 자녀들의 앞날의 건강한 삶을 불투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학교측, 교사, 부모, 사회 법적 조정자들 모두 문제 풀어가는 것을 낮게 작게 쉽게 부드럽게 풀어가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사도 더 깊이 바라보아야 하고, 특히 부모들도 겸손과 낮추임을 통해서 각각의 부족함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용서는 용서를 해 줌에서 시작합니다. 용서는 서로 풀어감에서 시작합니다. 용서는 상대의 잘못과 죄를 알고, 또 풀어줌에서 시작합니다. 용서는 죄을 잊고 잘못을 잊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죄와 잘못의 원인을 풀어가는 데 있습니다. 죄, 잘못을 풀어가면서 잘 골라내고, 취할 것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리는 데 있습니다. 용서와 잘못을 규정하는 데에 나만 잘했고 상대가 못했다가 아니라 용서하는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풀어가지 못하는 데도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상대가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고,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길을 알려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적극적인 용서입니다.


용서가 용서만이 아니라 그 죄와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거나 짓지 않도록 길을 마련하는 것이 적극적 용서입니다.

자녀들이나  가족들이, 친구나 동료,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할 때, 지금까지의 이런 죄와 사슬을 끊어야 우리 다음 자녀들 다음 세대에게 그 죄의 역사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나도 그로 우리 모두도 그런 죄의 역사를 끊도록 오늘부터 그 용서와 그 용서의 길과 방향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지금까지의 죄와 잘못의 역사를 끊고, 지금 오늘부터 새롭게 자유와 해방과 희망의 길을 가도록 새롭게 노력하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하게 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14, 6


죄와 잘못을 끊고, 그것을 좋게 풀어가기 바랍니다. 함께 선으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잘못으로 나가지 않게 방향과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 적극적인 용서입니다. 그래야 함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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