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흐름을 먼저(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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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5-04-03 10:13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았을 것이다." 요한 20,22-23
물은 흐릅니다. 그 모양 그대로 흐릅니다. 곧으면 곧게 흐르고, 굽으면 굽어서 흐릅니다. 막히면 채워지고 막힘이 멎으며 넘쳐 흐릅니다. 물은 가장 작은 알갱이 그래서 함께 모여 큰 물길이 됩니다. 추우면 차지고 더 추워지면 얼게 됩니다. 비가 얼면 눈꽃송이가 녹으면 다시 흐르게 됩니다. 물. 자연 그 자체입니다.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또한 물입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열리면 끝까지 갑니다. 그것이 물입니다. ''물'을 생각합니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은 돌의 부딪침과 돌의 충겨과 무게 때문에 그만큼 튀어오릅니다. 물도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 물은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고는 돌까지 품습니다. 돌도 연못의 일부가 됩니다. 연못은 돌을 자기의 동지로 받아들이고, 그곳의 물고기와 생물들의 식구가 되게 합니다.
물에서 '용서'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참으로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충격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게 심한 충격과 부딪침을 주어 내가 죽을 많큼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내게는 그의 충돌과 충격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들어온 일부가 되었고, 그것을 부정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 괴롬과 고통은 나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잊거나, 거부하고 싶어도 그것은 이미 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멀리 치워버리고, 없애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게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내게서 수용되고, 그것을 나의 생각과 마음의 밭에 받아들여야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사실, 내가 그로 부터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에게 잘못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나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찾고, 거짓과 불의로 압박하여 그가 그것을 챙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의 약함과 헛점을 이용하고, 강박하고 협공하고 힘과 영예를 이용하여 짓누르고 빼앗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힘있는 자는 자기 힘을 이용하여 불의한 이의 편에 설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약하고 가난한 이는 더욱 고통속에 머물게 됩니다.
용서에 관해서는 내 스스로 선하고 진리의 길을 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럴수록 정의와 공정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선과 진리와 정의를 방패삼아야 합니다. 그 정의가 나의 산성이 되고 성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허물과 부끄러움, 죄와 악습을 성찰하고 더 긴밀히 이에 대하여 극복하고, 그런 죄의 너울을 벗어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그 불의한 자나, 의롭지 않은 자의 주먹질과 그 고통 넘어서고 능히 이기는 승리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가 나에게 고통과 좌절과 괴로움을 안겼다. 하더라도, 나는 하느님 앞에 이웃 앞에서 선하고 진리를 따라 사는 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선물을 받습니다.
금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물처럼 받아들이고 흐르고 나아가고 바다를 이룹니다. 그런 마음과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용서이 은총과 은사가 성장합니다. 성령의 은총을 통해서 이 용서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주님,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하면 그가 용서받는다는 것을 깊이 새기게 하소서. 내가 용서하는 것이 내가 온전히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그 용서의 신비를 당신의 은총으로 깨닫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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