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참됨 안으로(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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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4-01-18 09:30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사람의 잘못된 습관, 허물, 그릇됨이 쉽게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릴 적 자라온 조건이나 상황에서
사람이나 주변의 환경에서 받은 형편, 가치, 접근, 수용 방법에 따라 그의 삶의 여정의 방향이 지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부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 사람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공동체, 조건, 환경, 규모, 관리,
돌봄에 따라 그의t삶의 향방이 달라집니다.
위기의 가정, 부모로 부터 소외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가정의 안정감, 부모들의 불균형, 시기에 따른 바른
가치관 미 제공, 공동체의 불안정성, 인격적 대화의 빈곤, 여러 사람을 거치는 공동체 환경에서 가정 사회 신앙의
균형의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비록 그가 학교 공부를 하고 지식이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인격적인 불안정이
있습니다. 판단력, 식별, 공감, 이해, 수용 등이 많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어날 때 부터 스무살 전까지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젊은 이, 그렇지 못한 불안정한, 집단의
기관에서 자란 젊은 이들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자리, 만남, 대화, 인사, 협의, 진행 등 판단, 식별,
행동 결정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스무살이 되어서 자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사회에 나와도 그들을 도와줄 실질적인 멘토, 인도자가 없기 때문에
스물 이전에 받은 인격 가치, 판단, 이해력이 사회 생활의 디딤돌이 되지 않아서 생활의 여정에서 곤란을 겪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대화 없음, 관계 안함, 만남 거부 등으로 나타나고 이것으로 향후 사회생활의 공감력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영적 생활에 결핍을 가져 옵니다. 점점 더 절망적인 상황과 조건으로
나갑니다
우리는 이 형제들의 외면만을 보기가 쉽기 때문에, 더구나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고 규정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식견보다 부정적 식견을 앞세웁니다. 우리는 이런 크고 작은
문제가 드러날 때 마다, 그것을 긍정과 선과 공정과 자비의 가치로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는, 이내
선과 사랑과 자비의 노력을, 그 행함을 포기합니다. 그런 가운데, 어려운 소외된 불안정하고 형편의 어려운
형제들이 더 가련한 환경으로 내몰립니다. 용서와 치유의 길이 멀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 온갖 것을 다스리에 하자." ... 하느님께서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 1,26-27
우리는 하느님 당신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창세 2,7).
세상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숭고한 사랑과 자비에 따돌림 당한 이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습과 그분의 생명으로 숨을 받아 인간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가장 초라하고 미흡하고 가련한 사람, 설령 그가 죽을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생명과 숨과 자비를 입은 이입니다.
주위에서 이런 형제들을 보고, 바라볼 때 그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이런 사랑과 자비의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용서하면서 그 자비와 사랑이 없다면 그는 용서에서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용서는 그 사람 안에 하느님의 생명과 숨을 그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것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의롭지 않거나 불의한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생명의 숨이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여! 바로 당신에게 하느님의 생명이, 그 숨이 있음을 아십시오.
그리고 미숙하고 부끄럽고 부질 없는 일을 하고 죄를 지어 죽을 운명이라도 그에게 하느님의 생명의 숨과 샘이
있음을 아십시오.
주님, 오늘 당신이 생명과 숨을 알고 사는 날이 되게 하소서. 모두에게서 그 생명의 숨과 신비가 있음을 새롭게
깨닫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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