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기다리는(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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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35회 작성일 23-12-21 09:32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요한 14,6
유보는 뒤날로 미루어 두는 것. 멈추어 두고 보관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종 우리는 어떤 일, 관계, 만남 등을 유보합니다. 일의 결과 조차도 그것을 끝을 맺는 것을 미루어 둘 때가 있습니다. 온전하고 완성을 위함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에서 도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고 나에게 고통을 주었는 데 '용서' 해야 한다는 당위에서 내가 '용서'를 지금, 꼭 해야 되는가? 어떤 경우는 '용서'라는 종교적 가치 때문에 피해나 고통을 당하고서도 오히려 나 자신의 용서하지 못함에 자책하고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서'에 대해서 유보할 때가 있습니다. 뒤 날로 미루어 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멈추고 다시 생각하고 성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의 치기, 의롭지 못함, 악행 때문입니다. 그는 줄곧 지금까지의 언행을 보면 유치하고 의롭지 못했으며, 그것은 나에게 뿐 아니라, 타인에게 그리고 공공의 사람들에게 까지 선과 정의를 상실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는 단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과 단체, 기관과 나라, 더욱이 위치와 지위에서 힘을 쓰고 권세를 사용하는 이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소시민이라며 그것의 파급이 소시민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갖게 하지만, 그의 지위와 직분에서 더 많은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면 용서에 대해서 '바로 용서'가 아니라, 그 용서를 유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의 악한 행위가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라면, 단지 종교적 용서라는 부담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의 유보입니다.
"세월도 오래되고, 시일도 지났으니 그냥 용서하면 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편의적인 용서는 피해를 당한 다수의 사람에게 고통을 더하고 숨을 옥죄는 일일 뿐 아니라, 악한 행위를 한 그 당사자도 아주 부끄러운, 소생할 수 없는 죽음의 절망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의 유보는 그가 악행에서 탈피에 그가 선으로 회심하고 선의 길을 걸어가며 그 선으로 걸어가는 가운데 선한 이가 되고, 그도 선으로 꽃피워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구원을 위한 유보입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의 회개와 용서를 위한 기도의 시간, 인내와 절제의 훈련 시간, 성장과 회복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악한 사람들, 의롭지 못한 사람, 치기와 교오한 사람들을, 종교적 용서를 안다는 이유 때문에 바로 그냥 용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악하고 의롭지 못한 이들의 회개가 없이 그냥 용서하는 것은 그들이 영원히 죄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용서하여 구원의 길로 가야하고, 그들으로 죄에서 회개하여 선의 길을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 교오한 사람들, 파렴치한 사람들을 그냥 용서하지 마십시오. 용서의 유보. 그 시간과 세월이 필요합니 다. 그렇게 해서 그들도 구원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 용서해 주어야 한다." 루카 17,4
그렇습니다. 용서는 회개가 전제 됩니다. 회개없이 악인을 그대로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돌아와 '회개합니다'할 때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회개에 따른 용서. 그를 위한 용서의 유보가 필요합니다. 주님, 제가 형제를 용서하게 하소서. 그러나 그의 선과 의로움의 회개를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서 진정, 그를 용서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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