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들음에서(2023.08.0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95회 작성일 23-08-08 09:45본문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들음이 있는가? 듣고 있는가? 아니면 들음이 없는가? 듣고 있지 않은가? 듣는 이는 들을 수 있고, 또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듣는 이는 알게 되고 지식을 얻습니다. 더 나아가서 지혜를 얻습니다. 그래서 자주 물어야 합니다. 나는 듣고 있는가? 경청하고 있는가?
말만 많이 하고 듣지 않는 사람! 그들을 만날 때 마다 평안과 평화를 잃습니다. 언제 그가 들을까? 들을 귀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가 들었을 때 평안이 있고 위로가 되고 희망이 있으며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들음이 중요하고 경험이 매우 소중합니다.
들음을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의 말을 신뢰해야 합니다. 상대의 삶과 경험과 대화를 연 마음으로 기쁘게 맞아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들음의 원천에서 참 뜻을 알게 됩니다. 나와 맞던지 맞지 않던지 간에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하는 길에서 길이 있고, 그 길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어떤 제자들은 그분을 따라갔고, 어떤 이들은 그분을 떠나갔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었는 데도,어떤 이는 제자가 되고, 어떤 이는 불평하면서 떠나갔습니다. 경청이라 함은 그 말씀의 원천, 근본을 깨닫는 일입니다. 단지 들리는 말에 쉽게 오고가는 것보다, 그 들리는 말을 생각하고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식별에서 경청의 원천에 도달합니다.
경청은 잘 듣고 깨닫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들음은 재 들음이 필요합니다. 형제가 말한 것을 고요한 곳으로 가져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판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찰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 만남, 일, 과제, 대화 등을 고요한 곳으로 가져와서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이며, 이것을 주님 앞에서 바라보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경청의 진미를 보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양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아기 요한을 즈카르야로 부르거나 다른 친족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천사의 말씀에 따라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경청의 덕의 가장 큼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적 감동과 위로와 기쁨을 가지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언니 마르타가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것을 중단하고 일을 도우라고 했을 때도, 그분의 그 말씀을 듣는 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에 머뭅니다. 주신 말씀을 간직합니다. 말씀에 머무는 이는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둡니다. 그 말씀을 실행하여 자신과 이웃에게 기쁨이 되게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에서 자유를 얻고, 주님의 제자로서 말씀의 일꾼 답게 용기 있게 나아갑니다.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누구의 말에서 그 말을 경청합니다. 경청의 원천을 찾아, 그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도, 이웃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전달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의 경청의 날이 되게 하소서. 경청의 여유를 갖게 하소서. 그 경청에서 말씀의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그 경청에서 사랑을 알고 복음을 알고 또 실천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