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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길과 진리, 모두를 살림(202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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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73회 작성일 23-07-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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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길은 좋은 길, 편안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길은 거친 길, 황량한 길도 있습니다. 아주 불편하고 힘들고 매우 위험한 길도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길, 평평한 길도 가지만, 거칠고 황량하고 그리고 위험한 길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그분은 평탄한 길만 가지 않았습니다. 버겁고 어려운 길. 그리고 위험한 길도 가셨습니다. 통상적인 지식과 영예, 지위와 권세를 얻는 길을 간 것이 아니라, 그 길과 상대적인 길로 갔다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 당신의 제자를 부르는데, 어부를 불렀습니다. 삶이 매우 팍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도 불렀습니다. 그는 백성에게 비난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혁명당원도 불렀습니다. 파당으로 보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 파당 입장에서 매우 비난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가족 친구 동료를 제자로 불렀습니다. 다른 뭇 사람들에게는 "자기 끼리끼리 하는 사람이군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는데, 부담은 되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였을 때, 율법에서는 마땅치 않는 부류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바리사이들은 "왜 당신의 스승은 죄인과 세리와 식사하는 것이요?" 하였을 때. 예수님은 "튼튼한 이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절대적 유대 율법 사회에서 율법에 마땅치 않은 부류들을 만나고 함께 하는 것은 보통스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율법에서 반하는 죄인 부류와 함께 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율법의 '정함' 고 깨끗함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과 교제하고 식사도 함께 하였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병자에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당신 소명을 떳떳하게 말했습니다. 더욱이 성전 제자에서 최고의 흠숭을 드리던 

유다인들 앞에서 "희생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라고 까지 한 것은 율법을 거스르는 것 처럼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절대적 규범에서 어떻게 진리를 끌어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을 고지고식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이 생명을, 살아나는 것을 더 중요시하신 것을 깨닫습니다. 그분의 진리는 율법과 전통 자체의 준수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의 삶의 우여곡절을 넘어서 그를 살리는 것에 가르침을 두는 '진리'를 행사하신 것입니다.

 

  진리란 자기 법과 논리, 규범과 규칙을 주장하여 그것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의 원천과 샘을 생각하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진리를 자기 법과 규범과 종교적 법칙과 이론에만 묶여있는 것을 말하는 이들을 봅니다. 그러나 진리는 생명과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선하든 악하든 가졌던 못가졌던, 권리가 있던 없던, 존경받던 못받던, 죄인이던 의인이던 그들을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두의 생명, 구원에 마음을 쓰셨습니다.

 

  진리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 그 진리를 따라 선한 길을 갑니다.

 

  주님, 오늘 제가 당신의 참된 길 생명을 위한, 삶을 위한 길을 가게 하소서. 나의 법과 규정과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살리는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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