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빈첸시오 바로가기

게시판

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살게 하는(2021.11.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21-11-11 09:26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아침에 사제관 밖에 쥐눈박이 새가 날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분명히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료 사제가 물과 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의 측은지심, 사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성 투르의 마르티노 축일. 그는 길에서 걸인에게 자기 외투의 반을 잘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그 외투 차림의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 걸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사제가 되고 후에 주교로 임명되고 프랑스의 교회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동료 사제의 선행을 통해서 그의 선함에서 생명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용서해 주는 것. 그것은 생명의 길을 위해서 입니다. 용서하면 상대의 허물과 부끄러움, 죄와 잘못을 삭쳐주고 없애 주는 것. 그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 그에게 참 자유를 주고 해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채무에 눌려 빚장이에게, 그 채권자에게 모든 권리와 자격을 박탈당하고 있던 차에 그 채무가 사라지고 더 이상 빚에 허덕이지 않게 되어 자유를 누리는 그것. 그 자유의 행복은 얼마나 크고 좋고 아름다운 것일까요?

 

  용서한다는 것은 우선 자기와의 화해입니다.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묶임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나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묶여 있고, 그것으로 눌리고 옥죄고 체포되어 있다가 풀리는 것을 말합니다. 옹친 실을 풀기 위해서는 엉킨 실 뭉치를 하나 하나 풀고, 모두가 풀릴 때입니다. 그때에 크고 두터운 이불을 꿰맬 수 있습니다. 큰 배를 들어올릴 수 있는 밧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용서한다는 것은 너, 그와의 화해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나만 손해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풀고 동시에 너 그리고 그를 풀어주는 것. 그것을 통해서 그의 빚을 탕감해 주고, 채무를 없애는 것. 그의 눌림 체포 목죄임을 완전히 풀고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그가 누리는 자유와 해방은 얼마나 크고 좋으면 행복할까요?

 

  용서의 끝은 생명입니다. 나, 너, 우리를 살립니다. 자주 자주 풀고 자유를 주고 받으며 그리고 해방되는 그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용서가 잘 되지 않으면 나의 의지로 용기로 그리고 도전으로도 시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첫숟갈에 배부르지 않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시도하고 노력하고 이어가는 가운데 용서의 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용서가 잘 안되면 오늘 나를 위한,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그를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더더구나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님, 이해도 받아들이기도 더구나 용서할 수 없는 이 마음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용서는 못하지만 당신의 은총을 청합니다. 당신 은총에 맡깁니다. 기도할 뿐 입니다."

 

  바로 이런 허물이 있지만, 부족한 기도. 그것도 용서의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용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시작은 이미 용서를 시작한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노력하고 그 다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지금 그를 온전히 용서할 수 없다 하여도 언제가는 용서할 수 있는 그 믿음을 주소서! 그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돌아오기를, 특히 주님 앞에 다시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주소서!

 


  이재을 신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