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웃음의(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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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1-08-26 09:37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웃으면 복이 온다. 고 합니다. 웃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소도 원숭이도 웃는다. 는 말이 있지만, 사람이야 말로 웃는 존재입니다. 아기의 얼굴은 불편하거나 아플때만 빼놓고 웃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이 웃는 얼굴보다 굳고 경직되고, 불편하고 우울한 얼굴을 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이는 늘상 그런 얼굴을 하고 다닙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 의 걱정을 혼자 다 가지고 사는 것처럼 하는 이도 있습니다.
웃으십시오. 웃도록 노력하십시오. 웃음을 만들어 가십시오. 세상 살이에서 늘상 웃고 웃으며 살 수 있을 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웃음을 만들어 가는 것도 또한 웃음이고 그런 노력은 칭찬받을 일입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식당이나 차안에서 그외 어디에서 웃도록 노력하고 또한 웃음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용서는 웃음에 있습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 는 말도 있습니다. 웃음 속에 시기와 미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웃도록 노력하는 것에 화와 분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웃음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어둠이나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용서는 웃음에 있습니다. 다른 이가 웃음을 선사할 때 함께 웃으십시오. 그러나 종종 더욱이 더 자주 나도 웃음을 선사하기 바랍니다. 웃음에서 용서가 솟아나니까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시는 것. 그것은 모두의 웃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뽑고 치유하고 고쳐주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이곳 저곳 이 마을 저 마을 온통 돌아다니시고. 그렇게 하신 것은 생명의, 그 웃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은 십자가 앞에서 그것을 물리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것도 모두의 구원과 생명을 위한 그 '웃음'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십자가와 그 죽음 앞에서 웃음을 지을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는 그들에게 아버지게 그들을 용서해 달라.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입니다. 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모두가 웃음을 짓기를 바라시며 그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용서는 웃는 것입니다. 그 웃음을 잊지 않고 또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 웃음에는 사랑이 있고 자비가 있습니다. 그 웃음에는 선과 진리가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끝내 웃을 수 있습니다.
'소가 웃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을 웃길 수 있어야 합니다. 소가 웃을 수 있도록 그것을 만들어 갑니다. 그 웃음의 노력이 경이롭고 아름답습니다. 소가 웃는다? 그 소를 웃기는 그 사람은 얼마나 거룩한 사람일까요? 얼마나 멋진 사람일까요?
성경에는 예수님이 웃었다. 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웃음짓게 하였습니다. 그 웃음에 행복을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용서. 그것은 웃음을 짓는 일입니다. 지금 웃고 있습니까? 그냥 웃으십시오. 웃고 시작하십시오. 오늘 여러번 웃고 그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십시오. 웃음의 사랑. 그것이 진정 용서의 길을 보여줍니다. 이왕이면 크게 웃으십시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이 시간 감사합니다. 이 자리 감사합니다. 웃을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따가도 웃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노력하고 웃음을 짓겠습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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