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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지혜의 길(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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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9회 작성일 21-09-0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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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누가 내게 고통이나 절망감을 안겨주면, 그 사람이 내게 부정의 사람으로 생각과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언제라도 그와 모습이나 행동거지가 비슷한 사람이 보이면 그에 대해서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라보게 됩니다.

 

  내 생각과 가치와 다르거나, 나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태도와 다른 사람을 보면 우선 그에 대한 긍정적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앞섭니다. 그러면 그에 대한 무의식적 회피나 거부감을 갖습니다.

 

  주위에 선하고 바른 사람이 있으면, 그리고 진리와 정의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심정적으로 그를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자선하거나 진리와 정의를 선택할 경우가 생기게 되면 그것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거부하기도 합니다. 선과 진리, 정의와 평화의 선택에 앞서 내게 손해를 보거나 어려움이 온다는 생각. 곧 피해가 올 것 같다는, 피해 의식 때문입니다.

 

  실상 늘상 사랑만 할 수 없습니다. 또 용서만 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단죄하지 마라.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을 알고 있고, 그 말씀을 따르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랑하지 않고 있는, 용서하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또 단죄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내게 절망감과 좌절을 안기고 심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가 가하는 강한 힘이나 폭력으로 상해을 입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폭력으로 폭행을 가한 상태에서, 그의 행한 잘잘못을 떠나서, 나는 상처가 깊고 아파서 신음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는 먼저 고통이 완화되어야 하고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고통이 완화되고 회복되고 온전해 지지 않으면 내면에서 나오는 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지워질 수가 없습니다. 이때 폭력을 행사한 그를 용서하라고 하는 것은 마땅하거나 가당하지 않습니다.

 

  선을 행한다.고 하고 정의를 행사한다고 해도, 폭력은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그 폭력에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를 용서한다면 그의 폭력과 악행에 대한 상당한 과정을 거친 후, 나 스스로의 완화와 회복, 궁극적으로 치유가 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용서는 1차적이 아니라, 2차적입니다. 내가 상처가 완화되어 가면서, 회복되고, 치유되면서 이루어지는 2차적인 용서입니다. 왜 나는 용서하지 못할까?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의 폭력과 폭행으로부터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후에 용서가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저들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였습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단죄하지 마라. 심판하지 마라. 그 말씀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노력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좌절과 아픔의 완화되고 회복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가운데 용서가 점진적으로 이루어 질 필요가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 그 용서에 앞서 나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완화에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치유되도록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용서하도록 하십시오. 그 길로 나아가십시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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