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사랑에서(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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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24-12-19 14:16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사랑. 사랑은 살리는 일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일으키고 걸어가게 하고 살게 합니다. 사랑은 '살림'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쓰러져 가고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나 너나 우리와 모두를 살리는 것 그 노력은 사랑입니다. 원수마저도. 그를 살리려는 것. 그것도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여도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은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무관심은 미움보다 더 차고 딱딱합니다.
사랑을 통해서 선을 이룹니다. 사랑의 지고함으로 정의를 이룹니다. 만일 사랑이 선이 아니고, 사랑이 정의가 아니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 애착이고 자기 만족이고 자기 보상입니다. 사랑은 꼭 선을 이루고 정의를 이룹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선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정의를 선포합니다. 사랑의 신비가 선이고 정의임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친 아드님을 죽을 죄인들과 그 인류를 위해서 파견, 그분을 보냈습니다. 왜 아버지가 죽을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보내겠습니까? 그 희생의 사랑이 선이자 정의이자 구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높으며 깊습니다.
의도된 사랑을 넘습니다. 형식적인 사랑을 넘습니다. 자기 사랑의 사랑을 넘습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필요와 조건과 이익을 넘어서 사랑합니다. 나의 것이 적어지고 사라지는 것과 같이 여겨져도 사랑합니다. 그 사랑에는 끊임없는 흐름과 넘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부담스럽고 행동에 옮기기가 어려울지라도, 그 복과 선물이 이미 도래했다는 믿음에서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소유하시는 하느님께서 더 좋은 것, 더 아름다운 것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이가 이해하며, 사랑하는 이가 수용하며, 사랑하는 이가 용서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이는 이해하기 어려웁고, 사랑 받지 못한 이는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에 무지한 이는 또한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사랑에서 멀리 있었고, 지금도 그 사랑에서 왕따되어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이는 용서에 무지하며, 또 용서함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 그렇습니다. 용서보다 사랑 받음이 먼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사랑 받음이 용서가 가능하며 또 그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정의의 사랑을 받은 이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정의가 깃들이지 않는 이는 또한 용서에 굼뜰 수 밖에 없습니다.
용서. 용서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기 바랍니다. 사랑을 더 배우기 바랍니다. 사랑에 한걸음 더 나아가기 바랍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함께 선과 정의를 겸비할 때 궁극적 용서가 가능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사랑의 길은 은총의 길을 살며, 주님을 믿는 길입니다. 사랑에서 은총을 알고 믿고 고백하는 이는 이해와 수용 그리고 용서의 길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아라"하십니다. 사랑의 은총에 열리기 바랍니다. 사랑의 믿음에 열리기 바랍니다. 사랑에 용서가 열리기 바랍니다.
주님, 사랑의 길을 살게 하소서. 사랑에서 선을 정의를 알게 하소서. 사랑의 지고함을 용서의 길을 살게 하소서. 선과 정의의 길이 사랑이요. 그 안에서 용서가 이루어짐을 알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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