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무지를 넘어감(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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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71회 작성일 21-06-03 09:43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새나 동물, 벌레 들에 이르기까지 무리를 떠나면 그들은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도움과 협력을 받을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무리지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힘을 낼 수 있고 막아내고 또 전진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것. 무리짓는 것. 그리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 새나 동물들에게. 그것이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빨래를 합니다. 손빨래는 물도 적게 사용하고, 비누도 적게 들어갑니다. 손빨래를 할 경우에는 옷 빨래를 하고 난 다음에, 사용한 비눗물을 재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비눗물을 재 활용하면 하수구를 덜 오염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비눗물을 덜 보내면 하천이나 강이 스스로 정화가 빨리 이루어지고, 하천이 빨리 건강해집니다. 그러면 강이나 바다가 건강하여 온갖 생명체들이 살아있게 됩니다. 결국, 인간에게 유익합니다. 자연 사랑. 곧 이웃 사랑. 하느님 사랑입니다. 반면에 세탁기를 사용하면 물도 많이 소비할 뿐 아니라, 세제도 다량, 다종류의 세제를 사용합니다. 그것이 천으로 강으로 바다까지 흘러갑니다. 그렇게 정화. 회복력을 늦출 뿐 만아니라, 다른 생물들을 죽이고 바다의 건강성을 악화 시킵니다. 결국 인간에게도 유해합니다. 이웃에게 고통을, 하느님 사랑과도 거리가 멉니다.
인간은 지식이 있다고 하나, 곧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무식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편리, 편함, 청결 등의 이유로 유해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합니다. 천한 지식을 자기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다른 이웃 생명 존재들의 건강을 상하게 하고, 또 목숨을 잃게 하는 지식과는 무관한, 무지의 존재 들입니다. 지식이 있으되 자기 필요이 지식이고, 지혜가 있으되 슬기롭지 않은 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고 지혜다. 정의와 공정을 상실하고, 다른 생명체를 마구 죽이는 지식을 지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 보다 다른 생물들이 지식이 있고 지혜가 있습니다.
용서. 그것은 앎을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곧 지식을 얻어 가는 것. 그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지식의 과정이고, 또한 용서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는 것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아는 것 만큼 말할 수 있고, 아는 것 만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 용서도 그렇습니다. 용서를 아는 것 만큼 용서할 수 있고, 그만큼 용서한다. 고 말하게 됩니다. 용서를 아는 것 만큼 행동하게 됩니다. 용서는 선을 지향하고 참됨을 지향하는 노력입니다. 정의로움, 그리고 공정을 지향하며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는 그것을 향하여 선과 진리로 풀어가는 과정, 그것이 지식이고 지혜입니다.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용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용서를 말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행위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용서를 행위로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고 있습니까? 용서를 알고 줄곧 용서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습니까? 용서를 모르고 줄곧 용서를 해오지 않았습니다.
용서는 그 무지를 넘어가는 한에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그 용서의 지식알아가는 가운데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나는 아직 그 용서를 모르고 있습니다. 용서를 말하지 않는 것은 지금껏 용서를 말하지 않았던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있는 나는 무지하며, 막지한 나이기도 합니다. 용서를 향해서, 선과 진리, 참과 공정을 지금부터 알아가고 그렇게 행하기 바랍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 그것은 무지를 벗는 것입니다. 지식을 향해서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 그 지식이란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을 말합니다.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향해서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그것이 지식입니다. 그 지식을 얻어가는 가운데 용서의 길로 나아갑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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