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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수용과 이해(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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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3회 작성일 21-05-13 14:39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도,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살아갈 때 소통과 균형을 이루어야 바르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균형과 흐름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균형을 잃으면 기우뚱하게 되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소통, 흐르지 않으면 막히게 되고 혼탁하게 되어 그곳이 

부패하게 되어있습니다.

  자연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은 순환, 흐르고 있습니다. 이 균형과 순환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깨끗하게 되고

정화됩니다.

  몸이 아프다고 한 이들이 많습니다. 어느 한 부분이 매우 아프고 통증을 느낀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픈 곳, 통증을 

느끼는 곳은 그것 자체가 균형을 잃고, 순환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곳이 아프다면 다른 부위나 기능

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니, 하루빨리 균형을 이루고 순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균형을 잃고, 순환이 안되고 있는 데, 균형을 맞추고, 순환을 시작하는 데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나는 균형을 

잃어왔고, 또 순환하지 않은 상태로 상당한 세월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는 그런 불균형과 제대로 순환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 생활이 습관화 되어있기 때문에 균형으로, 순환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성실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과 습관에서 균형을 잃었습니까? 다시 새롭게 균형을 위해서 노력하기 바랍니다. 지금 곧 시작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슨 버릇과 생활에서 순환을 잃었습니까? 다시 새롭게 순환을 위해서 훈련하기 바랍니다. 지금 곧 시작

기 바랍니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막혀있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따돌리고 싶다는 것은 내가 그와 벽을 쌓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원수를 맺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와 절벽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벽을 쌓거나, 장벽을 만들어 가거나 댐을 만든 것고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순환이라 존재할 수 없

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해하는 것입니다. 막혀 있는 물은 탁해

고 더러워지며 부패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대한 것 부터 시작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수용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그를 알지 못하고 그의 여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내게 잘못을 하고 그릇되게 하고 범칙한 것은 

그가 선으로 참으로 그 길을 모르기 때문. 그것을 모르는 한 그는 계속적을 똑같은 부끄런 행위를 하게 됩니다. 

똑같은 짓, 바뀌지 않은 그런 그릇된 행위 그것을 알아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성찰하기 바랍니다. 이해할 것과 수용할 것이 무엇인지 알기 바랍니다. 그의 탓 뿐 

아니라, 나의 탓도 생각하기 바랍니다. 잘 살고 바르게 살고 있지만, 내게도 탓이 있고, 정립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

입니다. 허물이 많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세상에서, 나의 성실과 성심과 그리고 평화의 길을 나 스스로에게 뿐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나와 그의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성찰과 묵상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성찰을 통해서 나의 탓도, 그의 탓도 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용서의 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도,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이해와 수용의 폭과 넓이를 넓혀가기 바랍니다. 성찰과 묵상을 통해서 더 깊은 곳을 가기 바랍니다. 나의 탓도 바라

보고, 그의 탓도 바라보기 바랍니다. 이해와 수용의 폭을 넓게 할 수록 용서의 길로 가까이 갑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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