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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선함으로(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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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21-03-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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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선함은 좋음입니다. 좋음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참됨입니다. 참됨의 선함의 지속입니다. 선함의 지속은 그 행위입니다.

 죄를 없이하다. 죄를 삭치다. 허물을 없이하다. 허물을 없애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를 단지 상대의 죄와 잘못을 용인하는 것. 그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함을 위한 항구한 노력입니다. 선이란 좋은 것을 위해서 항구하게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단지 상대의 잘못과 죄를 용인하는 것만으로 용서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용서의 대상은 너에 대한, 상대라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상대만이 아니라 또한 '나"이기도 합니다. 용서를 생각할 때 상대에 대한 용인과 또한 나에 대한 용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죄와 잘못의 용서위한 용인만이 아니라 '나'나 '상대'의 지속적으로 선함을 위해서 노력하고 또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용서는 죄와 잘못을 넘어서 선함, 좋음, 아름다움을 위한 지속적인 실천의 행위를 말합니다.

  나를 바라볼 때, 어떤 일은 어떤 만남은 심히 괴롭고 힘이듭니다.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은 이미 그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보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바르게 대하거나 이끌지 못하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스스로 원망하고 있다면, 나 스스로 상처를 받는 것. 입히는 것이 됩니다. 나 스스로가 받은 원망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게 되면, 또 다른 상대가 그런 부끄럽거나 그릇된 행동을 할 때에 우선 먼저 원망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상대를 나의 무의식의 마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대상, 특히 내가 선함을 지속하는 이유는 이런 나의 과거의 원망을 회복하고 치유받기 위함입니다. 회복되고 치유되어야 바르게 화해하고 용인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바리사이, 율법학자, 대사제, 의회원들이나 예수님 자신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받은 아픔이나 상처, 원망이나 고통을 예수님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받으셨다. 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들이 당신을 조롱하고 고발하고 죽이려고 한 공격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해결하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이 아버지의 일이라는 것과 그리고 아버지의 일의 선함과 참됨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항구할 때 온전한 회복과 고침과 온전한 자유와 해방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받은 그들의 당신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도 용서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용서에 그 선함과 좋음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 선함으로 항구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용서. 그것은 선함의 지속함. 선함을 위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복과 치유, 생명과 구원을 줍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오늘 원망과 불만, 불편과 불안을 선으로 바꿉니다. 선을 지속하여 상대의 죄와 허물을 용인하며 화해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치유되고 해방을 맞습니다. 그런 용서를 주님께 드립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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