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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걸림돌을 푸는 사회적 용서(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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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1-02-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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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태어나자 마자 소외되는 아기들이 있습니다. 아기들의 집이나 조금 크면 보육원에 맡겨집니다. 한편 가정에서도 부모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조부모, 친척에게 맡겨지기도 합니다. 부모 외에 조부모 등이나 가족에게 보호받고 자라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부모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 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일반 가정의 자녀들보다, 이런 위탁 기관 등에서 자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공동체, 사회적으로 소외되기가 쉽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한 노유자 시설에 형제들만 1000명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 온 형제들 상당수가 어릴 때 부모가 없거나 결손 가정에서 자라고,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한 이들입니다. 신체적 정신적인 어렵고 거기다가 볼보기가 어렵거나 가난하다면 그들을 격리시켜 기관에 연결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가정을 만나지 못하고, 돌봄과 사랑의 공동체를 만나지 못하므로, 그의 인생의 과정에 그리고 줄곧 굴절된 삶의 살아갑니다. 마침내 그런 기관에서 인생을 하직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스스로의 잘못이나 죄도 없이.  그렇게 처음부터 운명적으로 방향이 지어지는, 인생이 결정되는 그 상황과 조건들,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태어나는 아기들, 어린이들, 청소년들 그들의 참 삶의 존엄과 인생길. 묵상하게 됩니다.

 

  용서. 단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위탁되고, 사회 생활을하고, 그 가운데 굴절된 인생길을 가는 이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 그들이 인생의 여정을 바르게 되고 기억하고 기도해 주고, 일부 도움을 주는 것. 그것만이 용서의 길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인간 사랑과 존엄과 가치를 실제로 살도록 하고, 높여주는 것. 그것의 용서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기의 인생길 과정을 슬퍼하고, 불안해 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스스로 굴절된 길로 가도록 그냥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굴절된 삶을 회복하도록, 구조적인 도움과 방법을 마련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용서입니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잘 나가고 자라며 좋은 일과 자리를 만나고, 어떤 이는 부모를 알지도 태생의 원천도 모른 체, 소외된 일생을 살다가 죽어가는 허무한 삶을 함께, 연대하고 노력해서 해소하고 극복해 가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용서, 곧 공동체의 용서입니다.

 

  인간 대 인간, 소수의 가족의 용서는 적게 노력해도 그것이 가능하지만, 작은 가정과 사회적 공동체 가정의 화해와 용서는 이런 구체적인 공동체 회복과 치유의 노력을 통해서 사회적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세상의 굴절된 모순된 걸림돌을 하나하나 빼내갑니다. 특히 어린 구성원들에 대한 걸림돌을 해결해 나갑니다. 사회적 용서가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의 날. 태어나서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기관에 위탁되고, 그 생활이 회자되고, 그렇게 운명지어진 이 모든 소외의 굴레, 그것을 풀어가는 것. 사회적 용서. 함께 방법을 마련하여 가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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