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진리, 생명의 길(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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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20-11-27 09:47본문
금요일은 길 진리 그리고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어린 묘목이 줄기나 가지에 상처가 나면 큰 나무가 되어서도 그곳에 상처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람에 이르기까지 상처가 나면 그 상처의 결과가 남아있습니다.
실타래가 꽁꽁 엉기어 있으면 그 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풀려진 실은 옷이나 이불까지 꿰맬수 있고 고칠 수 있지만 엉킨 실은 어떤 곳에도 쓸수가 없습니다.
엉키고 묶인 종이도 그렇습니다. 그곳에 아름다운 글을 기록할 수 없습니다. 한장이라도 펴 있어야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인간이 피해를 입고, 상처를 얻는다고 하면, 똑같습니다. 그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와 해방의 길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없고, 더욱이 그 억압과 구속과 묶임의 성질로 상대를 압박하여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런 고질적 상처와 소외 품성을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에서 해방을 맞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예 물론, 해방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실상 인간은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면서 따스한 햇빛과 온난한 바람만 맞이하지 않습니다. 거친 비바람과 강추위 바람도 맞습니다. 인간은 춥거나 좋지 않은 날씨에 예민하듯이, 다가오는 불편과 상처와 피해에 예민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의 상황의 해결 보지 못하고, 부정적 피해의식으로 받아들일 때, 피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라잡게 됩니다.
성장 후에도 이런 피해의식이 그의 내면과 무의식에 자리잡아, 설령 어떤 일이나 만남이 긍정적이고 좋거나, 선하거나 하느님일이어도 그 만남이나 일을 기쁘고 즐겁게, 주님의 일로서 감사하며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비일비재하고, 좋은 바른 지식과 여건, 환경과 조건에서도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 그러니 어쩔 것입니까? 그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 삶도 회복될 수 있고 치유되며 해방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을 맞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곧 예수님의 진리의 길을 맞이할 때 가능합니다. 단지 그분의 진리를 맞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할 때 회복이 되고, 자유와 해방의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진리, 참의 길을 시작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자유와 해방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참, 진리의 길을 가지 않으면 과거의 피해의 무의식에서 깨어날 수 없으며, 그 피해의 똬리를 풀 수 없고, 그 똬리에서 헤어날 수 없습니다. 똬리는 결코 어떤 일과 만남과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선함을 선택하십시오. 참됨을 선택하십시오. 진리를 선택하십시오. 묶임과 속박과 억눌림의 환경에서 벗어나서 새 힘과 기운을 얻게 되고, 그 기능을 살리며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진리를 알고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진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눈을 들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실행하기 시작하면 주님은 당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여정과 역사속에서 받은 피해와 좌절과 절망의 깊은, 무의식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며 그들 온전하게 할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참과 진리를 행하고 그 진리의 평화를 선택하는 것은 나, 너, 우리, 모두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나무, 새, 동물 모든 생물들이 어릴 때 상처를 입으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인간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온전히 아물뿐 아니라, 그 상처의 흔적 조차도 사라집니다. 진리의 영께서 그렇게 온전하게 치유해주시고, 완전하게 해 주십니다.
금요일은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참됨으로 시작합니다. 선을 선택합니다. 진리의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그 진리에서 온전한 자유와 해방을 맞고 치유를 경험합니다. 그 치유의 모습으로 형제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길을 안내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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