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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선과 진리를 우선하라.(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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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0-04-0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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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굳었던 땅이 풀리고, 물이 흐르고, 물이 나무에 오르기 시작하면 만사에 변화가 생기고 온갖 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합니다. 풀리고 흐르고 올라가야 생명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요즘 봄철이 그런 때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그가 풀고 흐를 때, 그는 살아납니다. 묶여있고 막혀있고, 멈춰있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 풀도록 뚫도록 흐로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용서가 되기 위한 풀고 흐르고 뚫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작고 적어도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미소한 것이라도 시작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끝내는 온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보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한편 풀수없고 막힌 것을 뚫을 수 없으며, 흘러갈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실상  풀지 않고 뚫지 못하고 흘러 가지 못한다고 해서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말했듯이 궁극의 용서를 위해서 잠시 멈춤, 인내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유보합니다. 용서를 잠시 멈추는 이유는 나, 상대가 불의하고 부정하고 그릇된 악한 행위를 할 때입니다. 악습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나약한 본성으로 인한 실수과 부족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지적 부정, 악한 행위. 인간적 대죄를 그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바꾸지 않고, 그냥 용서한다는 것은 불의와 부정, 죄와 악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 악과 죄과를 용인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혐오(嫌惡)하시며,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불의와 부정, 죄와 악은 그를 죽게 만드는 것. 하느님은 사람이 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에서 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없습니다. 부정과 불의, 죄와 악한 행위에서는 나와 상대. 우리 모두에게서 하느님의 역사하지 못하십니다. 그 안에는 죽음 밖에 없습니다.

 

  용서하는 이는 자신 스스로 풀어가고 흘러가며 뚫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정의, 선과 진리를 실천하고 그렇게 살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매일 풀어가고 흘러가며 막힌 것을 뚫어가는 이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선과 진리를  따라 행동하는 이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신을, 상대를 용서했다는 것은 용서에 그릇된 허울을 입힌 것입니다. 

  

  용서는 선함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공정이 있어야 합니다. 공정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의로움과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용서에서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용서하려거든 선을 행하십시오. 용서에서 정의를 선택하십시오. 용서하려거든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용서를 위해서 평화를 선택하십시오.

  참 용서를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고 용서의 가치를 용기있게 실천하십시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진정한 용서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고 환희가 있습니다. 그 용서의 기쁨에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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