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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죄와 무지(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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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20-04-16 10:01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죄를 짓고, 잘못을하고, 허물과 부끄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나의, 우리들에게도, 조직과 나라 등 얼개를 가진 집단들에 의해서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죄를 짓는 것. 악행과 그릇된 행동을 취하는 것. 그것은 앎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앎은 참된 것. 진리의 뿌리, 그 알맹이입니다. 그 앎이 부족하거나 없으면 죄를 짓고, 악행을 행합니다.

 

 베드로는 유다인들에게 선한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을 '무지'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사도3,17

 

  무지. 그 무지가 선하신 예수님, 그리스도 메시아를 십자가형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지식이 없거나 율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참 앎. 선과 진리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지는 바다에 가라앉는 바위와 같습니다. 가라앉은 다음에 모든 것이 덮혀있는, 죽음과 절망만이 있습니다. 어떤 변화도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지입니다.

 

  '활동하는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 -괴

  '무지로 '결코 문제을 해결할 수 없다.'   -디즈 테일러

  '모든 어리석은 행동의 산모는 무지다."  - 이성호 

이 무지가 예수님을 죽음으로, 스테파노가 돌에 맞았습니다. 무지는 어리석음을 낳습니다. 그가 지식이 있거나 영예가 있다해도 무지가 있을 때, 자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상처와 아픔, 죽음을 안길 수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그가 무지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실수나, 착오같은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는 바꾸기가 어렵고,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무지는 생명이 없음. 죽음입니다.

 

  어리석습니까? 어리석은 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혜를 찾고 지식을 찾기 바랍니다.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상대의 무지로 하여금 지은 것. 곧 잘못되고 악한 행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그의 무지가 회복되거나 앎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가 지식으로, 지혜로 무지가 회복되면 그가 그런 죄와 악행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그 무지의 회복을 바라는 것 때문에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용서하기 이전에 그의 무지와 몰상식. 그 어리석음을 변화하고 바꾸는데 노력하십시오. 그 무지함을 탓하거나 훈계하면 그는 더 나쁘게 반응하며 대들 수 있습니다.

 

  앎이 있을 때 돌아오고, 회개합니다. 앎이 없는 무지인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용서. 내가 용서하는 것은 나도 앎을 알고. 상대로 앎. 참 지식으로 돌아올 때 용서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 무지를 깨닫습니다. 지식. 앎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앎을 위해서는 회심이 필요합니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무지를 벗어나십시오. 주님을 두려워 하고, 형제들을 선으로 사랑하십시오. 무지를 벗어나 용서하십시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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