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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선과 진리를 찾아가는(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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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3-11-16 16:32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해 준다는 것은 그것을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빚이 없다고 선언하고 빚 문서를 없애는 것을 말합니다. 

빚을 빌리며 빚을 갚아야 하고, 그 빚을 갚지 않으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게 잘못하거나 그의 악한 행위를 용서한다는 것은, 빚을 진 이가 그 빚을 탕감해 주어 빚이 없음을 선언하고 그 

부채 문서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한 행위와 불의함을 바꾸지도 않고, 반성하지 않는데 그것을 탕감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그냥 탕감하는 것은 나의 우매하고 무지의 소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함과 참됨과 진실함으로 살아서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야하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근본은 선한 사람으로 서는 것이 목적이고, 그 선함과 정의로서 하느님의 바른 자녀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자녀가 되는 것. 그분에게서 구원을 받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용서는 

그가 살아남에, 생명에 목표를 둡니다. 그래서 용서하라고 해서 무조건 용서한다는가, 용서만이 사람을 구한다는가?

하는 단순히 지식이 없는, 맹목적인 용서는 용서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탐욕과 오만함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그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서지 않는 한,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가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 없이 그를 용서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정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탐욕과 

오만함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구원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탐욕을 부리고 오만한 데 어찌 그것을 수용할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탐욕과 오만함의 이어짐은 그의 죽음과 멸망을 부추길 뿐입니다.

 

  부유하면서도 탐욕스럽고 오만한 자, 또한 가난하면서도 탐욕스럽고 오만한 자, 그들은 같은 죄인들입니다. 

부자이면서 가난뱅이가 있고, 가난하면서도 가난뱅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죄를 바로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도 선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다는, 우리의 무지이며 또한 치기입니다.

 

  우리가 용서한다는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용서가 그들 살릴 수 없다면 어찌 그것이 용서가 될 수 있을까요? 

그가 되살아나지 않고, 그의 오만함과 죄가 더 무거워진다면 그것은 화해와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그의 악함과 의롭지 못함, 불의와 부정을 선과 진리로 되돌리고, 그것으로 그들이 되살아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를 선과 진리의 길로 되돌아가서 생명을 얻어 살도록 하는 것이 용서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매일 

걸어가는 길은 모두의 탐욕과 오만의 죄를 벗는 것,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용서의 끝을 이루는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오만과 탐욕을 버리고, 선과 진리의 길로 의롭게 살도록 합니다. 용서의 길입니다. 

그 길로 인도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선과 진리 그리고 정의의 길을 따라가게 합니다.

 

  주님, 제가 오늘 오만을 넘고 탐욕을 넘게 하소서. 의로움과 선과 참된 길을 통해서 화해하고 용서하게 하소서. 

지식과 지혜의 용서의 길로 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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