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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사라짐을 아는(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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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4-02-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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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인걸( 人傑)은 뛰어난 인재를 말합니다. 예전의 시에 인걸은 간데 없고.. 란 구절이 있습니다. 지나간 세월에 좋고 뛰어난 이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흐르면서 시대에 따라 그런 인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역사가 다름과 뛰어나게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인걸이 그 살아있을 때 뛰어남을 보이고 공동체의 다른 이웃들에게 특이

함과 특별함을 보입니다.

 

  그러나 인걸이 사라지고, 이후에 우리는 아쉬움과 회한을 갖게 됩니다. 그러고는 그 인걸도 잊혀지게 됩니다. 현상적인 세상, 물리적인 세상에 그 자리에 남아있는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좋은 이도, 뛰어난 인재도 머물다가 삶의 뒤안길로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지금 서있고 말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선하고 좋은 일 그리고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그때, 함께하는 벗과 이웃들과 좋은 말을 주고 받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던 이들도 세상 저 뒤안길로 떠나갔습니다. 몇 달 전부터 산쪽 큰 길 옆의 어떤 노인 어른이 보이질 않습니다. 늘 새벽녁에 바깥쪽의 방 창문 안쪽 책상에서 책을 보던 이였습니다. 종종 마당에 나와서 풀도 깎고 휴식을 취하였던 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마당에 풀도 많이 자랐고, 치우지 않은 모습입니다. 저녁이나 새벽에도 이제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왕래가 없는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집 옆을 지나갈 때마다 인걸은 간데 없고.. 의 싯귀가 자꾸 떠오릅니다. 아! 인간을 저 뒤안길로 가는 존재구나! 점점 약해지고 또 소멸하는 존재구나!를 생각합니다.

 

  존재적인 인간의 삶을 통해서. 용서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용서란 말 이전에 "어찌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참 장하고 뜻이 있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깨달음에서 벽에 부딪칠 때, 깨닫기 위한 오랜 시간이 흐를 때, 당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용서 이전에 그의 모습은 그의 말과 행위는 존재했던 것. 존재하는 것이고, 또 존재하는 것은 이전 부터 있던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결국 용서 이전에 존재하는 그의 가치에 '그렇습니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런 나, 그런 그이가 그렇게 선함의 용기를 갖고 살아온 것.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이 요동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입니다.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내 마음. 그 마음은 그에게 화가 난다거나 미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진실이 참된 것이 손상될 때 나오는 나의 선의 몸부림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선과 자비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합니다. 그것의 참됨이 그르쳐지고 손상될 때,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그를 용서하지 못함이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의 선의 자존감이 손상되었을 때의 아픔의 반응입니다.

 

  사람은 그 존재에서 서서히 약해지는 것. 결국 소멸하는 존재. 용서에 있어서도 이 시작과 마침의 거대한 길에서 용서를 바라봅니다. 그 이해와 수용과 허락과 그리고 용서의 길로 나아갑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께 의탁하고 그분의 마음을 배웁니다.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라. 그러면 용서를 받을 것이다. 주님 그 용서의 엄청난 흐름에서 그것을 거스리지 않게 하소서. 용서의 흐름의 배를 타고 잘 저어나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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