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은총과 자비(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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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6-01-16 09:52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요한 20,22-23
일이나 사건, 그리고 만남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 접촉이 있습니다.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듯이, 모든 일과 만남과 사건에서 크고 작은 소리가 납니다. 약하게 접촉하거나 스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강하게 크게 부딪치면 서로의 강함과 약함 때문에 어려움과 아픔 그리고 고통을 겪게 됩니다. 내가 큰 충격을 받고 심한 고통을 느꼈을 때, 그 고통이나 아픔이나, 혹은 절망감이나 좌절 때문에 그 대상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그의 좋은 시도였다고 하여도 고통이나 아픔을 겪는 나는 그를 쉬이 받아들이고 수락하기가 어려운 것 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서 그의 존재와 삶이 규명되고, 또한 내가 성장하고 선으로 성숙되었을 때, 특히 진리의 삶으로 성숙되었을 때, 그를 용서할 수 있고 화해가 가능합니다. 진리의 삶으로 성숙되었다고 함을 하느님의 마음과 자비를, 그 은총을 알 때입니다. 그때 그와 화해할 수 있고,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내가 용서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은총의 자리에 나를 놓는 것입니다. 그 은총의 자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 그분의 자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고, 그 자비에서 그를 수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사실, 고통과 절망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알고 그 자비를 입는다 하여도, 그와 바로 화해한다거나 그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될 때까지는 그를 수락하거나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월의 흐름은 소중합니다. 세월의 흐름은 우리의 과거의 역사의 굴절된 삶을 약화시키고 관용적이게 합니다. 세상를 뒤로 하고 하느님께로 갈 때가 가까웠고, 상대에 대한, 그의 굴절된 삶을 알아채리고, 그의 삶의 결과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용서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그 자비하심에 우리를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 자비하심에서 그가 선과 진리의 길로 나아가고 그 은총에서 그가 개선하고 쇄신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도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받아주시고, 종국에는 그도 용서받아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그 자비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주님 용서에 앞서 늘 당신의 은총에 열려 있게 하소서. 용서에 앞서 늘 당신의 자비에 온전히 개방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와 그 은총으로 제가 용서받았음을 알게 하소서. 또한 당신의 자비와 은총으로 그 상대가 또한 용서 받음을 알게 하소서. 그와 내가 그 선과 사랑의 그 평화의 길에서 함께 서 있음을 알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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