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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사랑과 정의를(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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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19-10-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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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습니다.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그는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상대를 용서하기 위한 수고를 하기 바랍니다. 그 수고는 기도하기부터 입니다. 지금 용서할 수 없다면, 용서할 믿음을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하기 바랍니다.

왜 그를 용서할 수 없는가?

"용서의 마음이 생기지 않지? 왜 용서해야 돼? 용서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용서. 그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있고,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그의 대한 불신과 화와 분노도 있지만, 그의 악함과 그릇된 행위가 있었습니다. 불편 부당이 있었습니다.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악랄함도 있습니다. 내게 불의하게 공격하고 가격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그는 불의하고 부정하며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그를 용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그냥 용서하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사랑과 정의가 공존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주님의 귀를 거슬리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주님의 불이 그들을 거슬러 타올라 진영 언저리를 삼켜 버렸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자, 모세가 기도하여 불이 꺼졌습니다(민수 11,1-3).


백성이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렸습니다. "왜 이집트에서 이곳으로 데려왔느냐?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헤메었습니다.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광야에서 태어난 어린 사람들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빼고, 주님께서 주시어 살게 하겠다고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시체가 되어 광야에 쓰러졌습니다. 주님을 거슬어 반항했던 백성들은 광야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민수 14장 참조)


용서는 사랑과 정의를 포함합니다. 내게도 그에게도 정의와 사랑 찾게 하고 살게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그를 살릴 수 있습니다. 나도 정의와 사랑을, 그도 정의와 사랑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정의를 찾으십시오. 공정을 찾으십시오. 사랑을 얻고 자비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궁극의 용서에 도달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나도, 그도, 우리도 정의를 찾습니다. 공정을 찾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찾습니다. 그것으로 용서가 완성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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