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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상처받은 본성을 보라(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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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19-11-07 10:22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나, 너,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노력합니다.

용서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라봄, 헤아림, 이해(깨달음). 풀어버림, 축복의 과정이 있습니다.


상대, 타인의의 용서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용서. 본성의 용서도 중요합니다.

본인의 본성을 세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기억, 마음, 육체, 그리고 (그의)


우리가 언어와 힘으로 폭력을 당하면, 사람의 본성이 네가지 곧 기억, 마음, 육체, 자신의 영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우며, 상처를 받습니다. 한편 그에게 이것이  습관적으로 되풀이 되면 트라우마(내적 정신적 충격)가 됩니다. 


구조적 상처는 기억에 남고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몸에도 인식되고, 그의 심령에도 축적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상처를 받고, 어떤 날에 그가 그런 말과 행동을 취하지도 않았는데, 나의 의식과 마음이 닫혀지고,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과거의 말과 행위가 나의 본성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기억, 마음, 육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구나 나의 심령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심령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복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착하고 선한 자녀가, 하느님을 충실히 믿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의 일원이 충격적인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때 그가 느끼는 영적 감정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큰 충격과 함께, 그 원망의 대상이, 곧바로 미움과 분노의 대상으로, 신(神)에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 경우에 그 미움과 분노의 대상이 '하느님'께 갈 수 있습니다.


한편 상당수 청년, 어른 신자들 가운데도도 발견됩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강제로 기도하고 가기싫은 주일학교 등을 보낼 때, 마음의 저항을 가지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외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을 필요를 느끼긴 하지만, 하느님 때문에 자기의 자유가 박탈되고, 자기가 강제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느님을 믿기보다 원망하고 경원시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적극적인 강제 수단이 오히려 하느님을 멀리하는 영적 장애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영적인 상처가 됩니다.


하느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좋은 분이라는 것이 그에게 적용되지 않을 때, 그것은 영적인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상에서 각가지 일과 사건 속에서 비일비재 합니다.  


사람은 세상 살이와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많은 만남, 일, 사건 속에 살아갑니다. 긍적적인 일과 만남과 사건도 있지만, 부정적인 각가지 일에서 불편, 고통, 좌절, 슬픔 등을 겪습니다. 어떤 것은 쉽게 해결하지만, 어떤 일과 만남은 기억, 마음, 육체, 그리고 심령에 상처를 입히고, 그의 생애에 끊임없이 상처가 되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합니다.


문제는 본성의 상처에서 탈피해야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상대보다, 나 자신의 상처 치유가 필요합니다. 실상 용서도 나의 상처치유부터 되어야 함이, 그 근거입니다. 내가 먼저 치유되어야 그것이 해결되어야 상대도 용서하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본성의 상처들 그것은 내 힘으로, 스스로 이루짐에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이 상처는 기억, 마음, 몸 뿐 아니라 영적인 나의 심령도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영적인 상처까지 입었기 때문에 그것은 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그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곧 상처받은 나는 먼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상처를 받는 나는 기억이 나는 것. 마음에 쓰이는 것을 주님의 은총에 내어놓습니다. 믿음으로 그분께 나의 마음의 상처,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그분께 온전히 내어놓습니다. 그분의 은총으로 그것을 치유합니다. 은총만이 가능합니다. 그 대상이 나이든 상대든, 조직이든 간에 문제제기 하지 말고, 그것을 하느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둘째로, 나의 노력입니다. 상처의 원인 나이든 그이든 상관하지 말고, 이 이후에는 사랑으로 만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곧 오늘 부터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부터 용서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정의와 공정에 따라 만나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와 공정의 시작이 상처를 온전히 치유합니다.


지난 날의 상처와 트라우마의 치유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내어놓음. 그리고 사랑 정의 공정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용서는 나의 본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의 고통스런 상처의 기억, 마음, 육체, 그리고 나의 심령을 바라봅니다. 하느님의 개입을 청하고 나는 사랑, 정의, 공정을 실천합니다. 나를 상처의 구조를 풀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상처받은 기억, 굴절된 기억과 본성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사랑의 길로 나가십시오. 정의와 공정을 생각하고 실행해 나가십시오. 진정 용서의 길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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